일반화된 ‘광고 섹션’…“떠난 독자 안 돌아온다”


광고가 기사가 되고, 광고형 기사가 더 이상 ‘기사’가 안 되는 현실. 2013년 한국 신문의 현주소다. 미디어오늘이 27일 발행된 주요 신문들의 별지 섹션을 들여다 본 결과, 이른바 ‘광고형 기사’가 어김없이 지면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광고형 기사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본지 지면에 단 건으로 등장하는 ‘홍보성 기사’, 한 면을 털어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홍보하는 ‘홍보성 기획’에 이어 최근 몇 년 사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게 ‘광고형 특집 섹션’이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김지영 심의위원은 “5~6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형식”이라며 “(요즘은) 신문사들이 으레 하나의 제작 패턴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광고형 별지 섹션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27일자 D1면부터 총 8개면에 걸쳐 ‘미래창조기업’ 특집을 내보냈다.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효성, GS칼텍스, 현대제철,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SKT 등의 기업들이 각각 ‘기자’의 이름을 달고 소개됐다. 섹션의 1면 헤드라인은 였다. 동아일보는 “요즘같이 경영환경이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눈이 필요하다”며 “R&D에 대한 투자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뛰는 각 기업들의 사례를 묶어 ‘미래창조 기업’이라는 섹션 타이틀을 붙였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방적인 홍보성 문구들이 넘쳐난다. “포스코는 철강 명가로서의 위상을 지키면서 현재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종합 소재 및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3면)거나 “삼성은 이 ‘기회의 장’을 더 많은 젊은이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7면)는 식이다. “SK텔레콤은 일찌감치 ICT를 선도하는 기업과 국가만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ICT를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경영철학을 실천해왔다”(7면)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각 기사에는 기업의 로고도 소개됐다.

특정기업 위한 4면짜리 별지 섹션 제작

중앙일보는 8면짜리 ‘행복을 주는 약’ 섹션을 선보였다. 역시 각 기사마다 기자의 이름이 달려 있는 ‘기사’다. 그러나 1면부터 먹는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의 사진과 소개 기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광고형 특집 섹션’임을 스스로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는 맞춤형 분유 ‘노발락’, 갱년기 치료제 ‘훼라민Q’,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 가래·기침약 ‘뮤코펙트’, 항산화제 ‘아로나민’, 발기부전 치료제 ‘팔팔’ 등을 소개했다. 제품군마다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업체의 특정 약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기사들이다.

이를테면 “남성형 탈모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치료는 고사하고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국내에 출시한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가 탈모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1면)거나 “가래는 기도를 자극해 기침을 유발한다. 이런 원리에 착안해 개발된 약이 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가래기침 치료제 ‘뮤코펙트’다”라는 식이다. 중앙일보는 약의 효능은 물론, 해당 약품이 두루두루 검증을 받아 ‘믿을 만하다’는 점을 연달아 강조했다. 각 기사의 옆에는 제품 사진이 모두 컬러로 소개됐다.

조선일보는 아예 특정 기업을 위한 4면짜리 별지 섹션을 따로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창의혁신경영’이라는 타이틀로 제분업체인 ‘동아원그룹’의 계열사들을 4면에 걸쳐 소개했다. 1면에서 이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나라셀라’의 와인사업을 소개한 데 이어 2면에서 당진 제분공장과 반려동물용품 유통업체 ‘대산물산’, 사료업체 ‘동아원사료BU’를 소개했다. 3면에서는 수입차 페라리와 마세라티 공식 수입업체인 FMK와 식품 쇼핑몰 ‘바이원’을 소개했다. 모두 계열사들이다. 각 계열사가 제공한 로고나 사진 등 이미지 자료도 그대로 쓰였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이 ‘2013 대한민국 창의혁신기업인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첫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 회장은 제분업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혁신으로 밀가루 프리미엄화를 선언했고, 서양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와인사업을 진정한 품질주의라는 고집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4면에 걸쳐 게재된 8개의 기사들 중 어디에도 ‘기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신문윤리위 제재 받아도 광고성 기사 계속 늘어

서강대 언론대학원 황진선씨(현 법률신문 편집국장)가 2011년 제출한 석사논문 ‘일간신문의 홍보성 기사의 추세·유형과 신문매출액·발행부수의 관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에는 언론사가 먼저 기업에 홍보성 기사를 제안하고 광고를 받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홍보성 기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로 2008~2009년을 꼽는다. 언론관련 단체들이 만든 자율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홍보성 기사’와 ‘광고형 특집 섹션’에 내린 심의 위반 제재조치 건수는 2008년 4월~2009년 3월 15건에서 이듬해 같은 기간 182건으로 급증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은 ‘홍보성 기사’나 ‘광고형 특집 섹션’으로 신문윤리위의 제재조치를 받았다. 2008년 4월~2009년 3월과 2010년 4월~2011년 3월을 비교해보면 조선일보는 2건에서 20건으로, 중앙일보는 3건에서 18건으로, 동아일보는 4건에서 24건으로 제재조치 횟수가 증가했다. 0건이던 한겨레도 10건의 제재를 받았고, 경향신문은 1건에서 8건으로 늘었다. 매일경제는 2건에서 36건, 한국경제는 3건에서 22건, 머니투데이는 7건에서 22건, 서울경제는 8건에서 19건으로 증가했다. 그 밖의 일간지와 경제지, 스포츠지, 지역신문도 예외는 없었다.

신문윤리위 김지영 심의위원은 27일 통화에서 “신문업계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이런 식의 홍보성 기사가 굉장히 많아졌다”며 “광고가 많이 쏠리는 (규모가 큰 신문사) 쪽에 (홍보성 기사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7~8년 전만 해도 기자들이 이런 기사를 안 쓰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게 보편화된 것 같다”며 “신문업계의 어려움을 반영한 현상인 것도 사실이고, 저널리즘 원칙을 어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광고형 특집 섹션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안사항'에 해당하지만, 경우에 따라 수억 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산업의 ‘위기’를 이유로 이 같은 광고형 기사가 남발될 경우, 이는 부메랑이 돼 신문사들에게 날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27일 통화에서 “길게 봐서는 신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문산업의 신뢰를 제고하고, 떠났던 독자들을 돌아오게 만드는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며 “‘언 발에 오줌 누기’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오늘 기사 부분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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