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곧 실업’··· 명절·방학 때 집도 못가는 청춘들

“이번 설날에 집에서 탈출하고만 싶어요. 아직까지 취업을 못 해서 가족들에게 염치없고 친척들에게도 눈치가 보이고…”

3일 일요일 오후, 청주대 도서관에서 만난 이강석(가명·2010년 경제학과 졸업)씨의 말이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졸업생 이씨는 아직까지 취업 준비생이다. 이씨는 어려운 가정 환경이었지만 학자금 대출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안정된 직장에 취업해서 더 나은 보수를 받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이씨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다. 여러 기업체에 수차례 원서를 냈지만 내리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이씨는 ‘스펙’이 부족해 지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은 더 많다고 하소연 한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지방대생이라 차별받는 건 아닌지….” 이씨의 근심이 깊어져만 보였다.  

▲ 지난 1월 31일 찾은 충북대학교 형설관에는 대학 고학년을 비롯해 취업을 준비하는 장수생들로 가득했다.

‘스펙’ 뒤진다면 ‘스토리’ 보여주마

지난달 31일 충북대 형설관 앞에서 만난 최은혜(가명·22·사회학과 재학 중)씨는 “방학 중이라 고향 집에 내려가고도 싶지만 취업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요”라며  아쉬어했다. 최씨 역시 취업 준비 때문이었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가는, 아직은 낭만을 꿈꿀 꽃다운 나이지만 스터디반에 들어가 광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자격증을 따는 등 취업에 중요한 가산점이 붙는 소위 ‘대외활동’에 최씨의 일상은 분주했다. 학점과 토익 점수가 높은 것만으로는 취업을 담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점과 토익 등 ‘스펙’도 중요하지만, 공모전 수상과 자격증 흭득 등 ‘스토리’가 요즘은 취업에 대세로 통하고 있다.

최씨는 사회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당찬 꿈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는 “이쪽 분야는 학벌을 많이 보는 직군이에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앞 글자 영문 이니셜)나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의 앞 글자) 그 아래 대학들이면 자기소개서도 보지 않는다고들 해요”라고 말했다.

지방대생들에게 불리한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정보에 있어서도 서울·경기 지역과는 많이 달린다고 아쉬워한다.

최씨는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이전부터 공모전 스터디가 활발히 진행되고 정보도 많았지만 지방은 스터디도 최근에 생겼고, 취업 관련한 정보도 부족하고 대학에서 취업 프로그램도 상대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서울·경기 지역 대학생과는 비교하면 불리한 입장“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방대학들의 취업 준비생 관리 허점(?)도 지적했다. “기업에서는 대형 TV와 리모콘을 원하는데, 지방대학들은 리모콘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리모콘 뿐 만 아니라 TV도 크게 만들어야 기업에서 우릴 사가지 않겠어요?”

인간의 존재를 상품으로 극단적으로 표현은 했지만 지방대학에서 취업에 대한 좀 더 나은 대안 방안을 담아달라는 바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최씨는 학벌로 실력을 평가받는 현실적 모순에 분노하지만 시대가 조금씩 나아질 것이란 것을 희망하며 공모전 입상과 자격증 획득으로 자신을 업그레드 하는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반면 지방대생이라 설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부족해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고백을 하는 취업 준비생들도 있었다. 충대 형설관은 대학 내에서는 형설대학원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이곳에는 이미 졸업한 ‘장수생’들이 많다.

김승철(가명·33·토목학과 졸업)씨는 “졸업하기 전까지 이곳 형설관은 오지도 않았어요.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 이제 안정된 취업의 필요성을 느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중학교 친구 박경태(가명·33·문헌정보학과 졸업)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박씨는 “지방대생이라 취업하는데 불리하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실력이 부족해서 아닐까요? 실력이 있다면 왜 뽑히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 형설관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한담을 나누고 있다.

수도권대 VS 지방대 소득격차 벌어져

하지만 한 매체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방대생들 10명 가운데 7~8명은 4년간 열심히 대학을 다니더라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서울·수도권 소재 대학과 비슷하게 등록금을 내고 취업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막상 취업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2월 파악한 ‘대졸자 취업 현황’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55.6%, 지방대생은 53.8%로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대기업, 공기업 등 선호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올해 충북 도내 4년제 대학을 올해 졸업하는 최영록(27)씨는 “대기업 15곳에 원서를 냈지만 그나마 면접이라도 보러 오라고 한 곳은 딱 한 곳 뿐 이었다”며 “그래서 우리 같은 지방대생들은 결국 고향 주변의 중소기업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두 명 중 한 명은 그런 일자리조차 못 구하는 현실이다.

수도권 대학 졸업생과 소득 격차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1982년부터 20년간 전국 53개 4년제 대졸자의 입사 후 연봉을 출신 대학 소재지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0대 88.2(1982년)였던 수도권대 출신자 대 지방대 출신자의 첫해 연봉 비율은 100:86.5(1992년), 100:85.1(2002년) 등 갈수록 벌어졌다.

서울·수도권보다 대학이나 산업 시설이 적어 기업의 취업 정보를 얻는 데도 불리하다. 서원대 4학년에 올라가는 박진성(가명 26 국문학과)씨는 정보 부족을 아쉬워하는 엄씨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대학이 밀집해있고 대기업 본사나 연구개발 시설이 많은 서울의 대학생들만큼 최신 취업 정보를 얻기 어렵고 기업과 교류 기회도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대생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시선도 지방대생에겐 깊은 상처가 된다. 현재 지방대학엔 약 110만 명, 수도권 대학엔 약 70만 명이 재학 중이다.

지방대 출신의 취업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지방대생은 ‘졸업이 곧 실업이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왔을까. 이는 취업시장에서의 지방대생 차별이 가장 큰 이유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응시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은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지방대생의 취업차별은 반드시 근절돼야 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오직 실력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중론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