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과 박 양은 소위 ‘러브장’을 써가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 16일 오전 청주병원 장례식장에는 남녀 고등학생 30여명이 모여 잔뜩 굳은 표정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몇몇 여학생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교사로 보이는 서너명의 어른들은 무언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수업도 거른채 이들을 장례식장으로 모이게 한 주인공은 청주 모고교 1학년 김정훈군(가명 15세)과 모여고 1학년 박선아양(가명 15세).
이들은 10월 15일 밤 8시 55분경 청주시 흥덕구 S아파트 15층 옥상에서 서로 부등켜 안은채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10대 남녀의 자살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제기됐다. 두 학생의 교제를 부모님이 반대해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느니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심취해 있었을 것이라느니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사건은 금새 언론과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한권의 노트에는 유서와 함께 이들이 그동안 사랑을 쌓아왔던 흔적이 묻어 있었으며 부모의 반대나 자살사이트 등 흔히 넘겨짚을 만한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러브장’ 만들어 애정 확인
‘나 죽어도 누나랑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아야 돼. 나 참 바보같지 … 죽으면 선아랑 같은 영안실 쓰게해 줘. 영혼식도 해 주고 … 마지막 부탁이야. 사랑하는 할머니 죄송해요. 오래오래 사시구요 행복한 일만 생기세요’
김군이 가족에게 남긴 글이다.
박양도 ‘우리 엄마 이제 혼자 어떻게 살지 …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아 … 부탁이 있어 꼭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줘. 정훈이와 같이 장례식 치러줘요. 가루도 같이 뿌려주고요’ 라는 글을 남겨 자살 동기가 순수한 사랑이었음을 내비쳤다.
또한 박양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할머니 미안해요 … 할말이 없어 … 지금까지 이쁘게 잘 키워 주셨는데. 나 …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 이렇게 됐어. 죄송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몸도 편찮으신데 나 땜에 더 아프겠다. 휴… 나 한테 너무 잘해줘서 감사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나만 바라보고서…’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나타냈다.
김군과 박양은 교제하면서 이른바 ‘러브장’을 만들어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몸을 던진 아파트 옥상에서 발견된 노트에는 이들의 유서와 함께 여러가지 사랑의 표현이 실려 있었다.
박양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러브장’에는 김군이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노트에 감기약을 붙여 놓고 걱정하기도 했으며 동전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붙인 뒤 ‘우리의 사랑이 무너지지 말자’고 적어 놓기도 했다.
특히 ‘애정성적 통지표’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박양은 김군에 대해 유머, 성실도, 애정표현도, 지식보유상태, 건강, 관심도, 바람필 확률, 가창력, 패션감각, 개성도 등으로 분류해 점수를 매겼다. 이중 지식보유상태에는 점수 ‘가’를 주고 ‘공부좀 해라’고 적어 놓았다. 그 밖에도 장점과 단점을 적어 가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러브장을 보면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좋아 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동반 자살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청소년 동반자살 사건의 경우 부모의 반대 등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 경우 아무런 외적 요인이 없었다”고 말했다.




10월15일 밤 8시55분 고교 1학년생인 이들은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유서를 남긴채 몸을 던져 동반자살했다.


청소년들의 가치관 정립이 필요
이들의 자살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완벽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게 청소년 상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젊은 세대들의 지나치게 감각적인 행동 양태도 하나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김군과 박양이 교제해 온 것은 불과 100일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러브장’ 뒷 부분에 ‘백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 백일날 뭐 하지 … 백일을 자기랑 맞게 되어 너무 기뻐 … 요즘엔 너무너무 행복해. 자기가 나 많이 좋아해 주니까 …’라고 적었다.
또한 이들은 교제 사실을 가까운 친구 몇 명 외에는 알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이성교제를 공개하는 것에 비춰 이례적인 것이다.
박양의 담임 교사는 “선아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선아의 사고 소식을 듣고 알았다는 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중간고사에서도 선아는 반에서 4등을 할 정도로 성적도 꾸준히 올랐고 성격 또한 활발해 전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군의 담임 교사도 “정훈이 또한 결석 한 번 안 할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사소한 문제 조차 일으킨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모범생이라할 만큼 성실했던 이들의 동반 자살은 그래서 더욱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한 청소년 상담기관의 관계자는 “완벽한 사랑이란 없다는 말을 하잖는가. 이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같이 목숨을 끊음으로서 사랑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는 신세대식 사랑이 이들을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삶과 사랑에 대한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워야 할 필요성을 다시한번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