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간 네이멍구 마오우쑤에 1000만 그루 심어
정부지원금 한 푼도 받지 않고서 ‘1400만평의 기적’

▲ 인위쩐, 바이완샹 부부. 책 <사막에 숲이 있다>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불청객 황사가 매캐한 흙냄새와 함께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황사의 진원지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의 광활한 사막이다.

이곳의 사막은 ‘움직이는 모래언덕’으로 불린다. 이곳의 봄바람은 이름처럼 산들거리지 않는다. ‘사막의 악령’이라고도 부르는 봄바람은 밤사이에 모래언덕을 옮길 정도다. 사막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중국의 4대 사막 중 하나인 네이멍구의 마오우쑤(毛烏素) 사막은 대표적인 황사의 진원지이지만 한때는 푸른 초원이었다. 그러나 무차별한 벌목과 양떼로 인해 점점 황량해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다 기온상승까지 겹치면서 사막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인위쩐의 마을 징베이탕(井背塘)도 ‘보배로운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곳에 30년 가까이 나무를 심어온 여자가 있다. 실화의 주인공은 인위쩐(殷玉眞·47)이다. 인위쩐은 6년 전 남편 바이완샹(百萬祥)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열린 ‘죽산예술제’의 초청으로 첫 해외나들이에 나섰던 것이다.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고 언제부턴가 묘목시장도 시들하다는데 지면을 통해 인위쩐의 삶을 조명해본다. 2006년 출판사 서해문집이 출간한 <사막에 숲이 있다·저자 이미애>를 통해서다. ‘나무를 심으려면 이 여자처럼 심어라.’ 1004만 그루 나무심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주시에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 인위쩐의 이야기를 쓴 이미애 작가의 <사막에 숲이 있다> 표지.
인위쩐은 갓 스무살이 되던 1985년 고향 산시(陝西)성을 떠나 마오우쑤 사막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마오우쑤의 징베이탕(井背塘)에 사는 거주민은 남편 바이완샹 단 한 명뿐이었다. 양떼를 몰고 다니던 인위쩐의 아버지가 바이완샹의 아버지에게 ‘딸을 며느리로 주겠다’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부부는 모래바람을 피해 토굴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사방이 모래뿐이고 길조차 없는 사막에서 몇날 며칠을 통곡으로 보낸 인위쩐은 차츰 남편에게 연민을 느꼈고, 1주일 만에 문득 “여기에 꽃을 심으면 안 될까요? 꽃이 자라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그때부터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전설이 시작된다. 꽃과 나무가 있으면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70리를 걸어가 묘목가게에서 일한 대가로 백양나무 묘목 30그루를 얻어왔다. 고생 끝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으나 모두 모래바람에 쓸려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인위쩐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를 반복한 세월만 7년. 어느 날 인위쩐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풀이 자라는 곳에 나무를 심으면 뿌리가 더 단단히 내린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모래 속에 떨어진 풀씨가 물기를 만나 껍질을 깨고 싹을 틔울 확률은 1000분의 일, 만분의 일이었지만 그는 지문이 닳도록 다니며 모래에 풀씨를 흩뿌렸다.

사막에 뿌려진 풀씨는 운이 좋아 새가 먹지 않으면 여름 내내 6mm정도 내리는 비나, 겨울에 내리는 눈의 수분으로 싹이 텄다.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바람을 피해서 모래언덕과 언덕 사이의 계곡에 양쑤라고 부르는 백양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다. 묘목은 1년 동안 부부가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주면 뿌리를 내렸다.

낮에 물을 주면 빨리 증발하기 때문에 부부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3∼4시까지 나무에 물을 줬다. 물을 줘야 할 땅이 수십 ㎢에 이르기 때문에 부부는 밤에 물을 주다가 피곤해 사막에서 잠든 적도 많았다. 마침내 나무들은 10그루를 심으면 8그루가 살아남았고 꽤 큰 키로 자라났다.

▲ 사막에는 이렇게 숲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 책 <사막에 숲이 있다>에서.
작가 “성자처럼 고독하고 의연”

나무를 심기 시작한지 15년 가까이 지난 1999년, 기자들에 의해 인위쩐이 만든 오아시스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찾아오고 인위쩐의 집에 머물며 함께 나무를 심기를 원한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죽으려고 했다가 기사를 읽고 삶의 희망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미국인은 그녀를 찾아와 큰돈을 내놓았는데, 그가 굳이 인위쩐을 만나러 온 것은 사막이 숲으로 바뀐 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위대한 인간을 보고 싶었다”는 것.

20년간 부부가 사막을 숲으로 만든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 10배에 이른다. 낙엽이 떨어진 사막에는 점차 흙이 생기기 시작했다. 숲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드디어 사막에 우물이 생긴 것이다. 모래가 가라앉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물을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솟아났다. 이어서 전기도 들어왔고 사막을 떠났던 친척들과 이웃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채소와 과일, 곡식들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사막을 녹지로 만든 이들 부부에게 2001년 ‘치사(治沙)영웅’ ‘노동모범’ 칭호를 내렸다. 또 사막에 우물을 파 주었고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는 부부를 위해 수차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고, 트랙터도 제공했다. 이들 부부가 녹지화한 땅에는 ‘사막녹색생태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위쩐은 그러나 이렇게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땅을 숲으로 만드는 동안에는 국가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사막에 숲이 있다>의 작가 이미애씨는 에필로그에 “모래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풀씨를 뿌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살갗을 후벼 파는 모래바람 속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녀의 어깨엔 묵직한 풀씨자루가 걸려 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때때로 신의 가르침을 받은 성자처럼 고독하고 의연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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