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학교 교육도 정체성 변화 60년대120명이 12명으로 줄어

소수민족의 고민중 큰 비중을 차소지하는 것은 역시 교육문제다.
한국에서 경제적 성공으로 정체성을 확보한 화교사회도 마찬가지다. 충북도내에 화교학교는 청주 충주 제천 등 3곳에 있다. 모두 화교 3세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과정의 소학교다.

청주 화교소학교(교장 양서숙. 청주 신동양대표)는 사직동 실내체육관 맞은편의 후미진 뒷골목에 있다. 재학생은 고작 24명이다. 그러나 순수(?)화교는 1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2명은 한국 학생들이다. 일부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의 외국어 조기체험을 위해 취학전 이곳을 거치게 하거나 1,2학년등 저학년을 이수케 한다.

교직원이라고해 봤자 교장 한명과 교사 2명이전부다. 실제 교육은 교사 2명이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전담한다. 고학년을 맡는 이전균(李傳鈞)교사(39)는 "예전에 비해 학생수가 많이 줄고 있다’’고 크게 걱정한다. 청주 화교학교의 대부는 지난해 6월 작고한 고 유관중(劉寬中)교장이었다.

46년 중국 내란을 피해 한국으로 피신한 그는 부산 피난섕활을 거쳐 전국을 떠돌다가 청주에 정착했다. 그가 65년음식점 사업에 실패한 후 교사로 변신할 때만해도 학생수가 120여명에 달했으나 지금 이렇게 준 것이다. 지난 67년 청주시 상당구 수동 한국은행 옆자리에서 지금의 사직동으로 이전한 소학교는 올해 400여평의 부지에 간이건축물로 교사(校舍)를 신축함으로서 비로소 학교의 모양을 갖췄다.

24명 학생에 3명의 교직원

이곳 소학교는 청주 화교사회의 구심체다. 때문에 과거에는 매년 10월 10일 쌍십절마다 화교가족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각종축제와 이벤트를 함께 하며 유대감을 다졌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굳이 화교사회의 이완현상(?)을 탓하지 않더라도 현실이 변한건 사실이다. 교사들도 이점을 걱정한다. “학교를 중심으로 한 응집력은 화교사회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학생수도 줄었고 또 학생들의 모국어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화교 2세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화혜택 없이 학교에서 모국어와 역사를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교육이었고 때문에 중국말을 아주 잘 했다. 그러나 지금 3세들은 중국말보다 오히려 한국말에 익숙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국가관 확립이나 반공교육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실용성이 더 중요시된다. 이들은 중국말보다 컴퓨터에 더 친하다. 적대적 반공교육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모택동 등소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비난의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교육의 정체성을 따지며주입식 국가관을 강요하는 시대는 분명 지났다. 이는 현실이다.
"이교사의 얘기다.

적대적 반공교육 사라져

청주 화교 소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 상급 화교 학교에 다니는 것이 통례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후 학업을 계속할 경우 대부분이 대만 유학을 택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제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대학 진학자의 80∼ 90%가 대만 유학길에 올랐으나 지금은 겨우20∼30% 정도만 모국을 찾는다.

화교들의 교육에도 획일적 잣대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엔 화교 스스로 한국 대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화교들의 한국화(韓國化)는 비단교육뿐만 아니라 화교사회 전 분야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아예 처음부터 한국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물론 한국인과 결혼하고 귀화하는 2, 3세들도 많아졌다.

 "이 교사는 이런 추세에 대해 “화교 신분으로는 아직도 사회적 제재가 많은 현실에서 자기생존권 보호차원의 선택일 수 있다. 때문에 화교사회에서도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아직 대다수 화교는 민족 동질성을 소중히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더라도 교육문제는 아직도 화교사회의 난제다. 우선 학교를 나오더라도 장래가 불투명하다는게 문제다. 한국대학에 진학하기도 힘들고 또 들어가서 졸업하더라도 사희적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緣)을 중시하는 한국적 특성 때문이다.

교육문제는 아직도 풀어아 할 난제

올초 청주 출신 화교 학생이 동국대한의학과에 입학, 화교사회의 큰 부러움을 샀다. 주인공은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서 D한의원을 운영하는 이모씨의딸((19)이다. 그는 청주소학교 3년을 중퇴한 후 서울로 전학, 화교학교 중고과정을 거쳐 국내대학에 합격했다. 이 정도면 화교사회에서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힘들게 공부해도 사회정착에 어려움이 많다.

과거에는 중국음식점을 대물림했다면 지금은 한의학을 전공, 개업하는 것이 일종의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다. "청주화교협회 이동석(李同石)회장은 “경제적인 안정 못지않게 교육과 직업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이방인이라는 소외감을 완전히 벗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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