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 뼈묻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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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에 뼈묻을 일만 남았다'
  • 충청리뷰
  • 승인 2001.10.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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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최장수 중국집 ;태동관'의 산증인 이문강 씨

이씨가 한국땅에 발을 디딘 때는 일제에서 해방된 45년 9월이었다. 19세의 나이로 친척들을 찾아 입국한 이씨는 수원을 거쳐 청주에 정착하게 된다. 이씨의 4형제는 모두 청주로 모였고 한때는 30여명의 대가족을 이루고 지내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피난길에 올랐고1.4후퇴 때는 보은까지 밀려갔다.

당시 수중에 있던19만원의 돈을 털어 황소 1마리를 사서 피난짐을 꾸려 떠났다 피난중에 아내가 난산을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으나 휴전직후 소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유일한 재산인 황소를 200만원에 되팔수 있었다. 이 돈으로 시작한것이 52년 석교동에 문을 연 중국음식점 ‘동승관’이었다.

 이씨의 천성적인 근면함과 친절로 음식점은 인기를 더해 최고 상권인 성안길에 ‘태동관’으로 신축개업을 하게 된다. “그때 돈이 없어서 그만한 땅에 건물을 지을 형펀이 못됐다. 그런데 고맙게도 삼화토건 표재범 사장이 자기가 우선 지어줄테니 나중에 갚으라고 하면서 건축을 해준 것이다.

정말 정신없이 일했고, 민기식의원이 자주 찾아왔는데 선거가 있을때는 하루에 1000그릇 이상 팔아주기도 했다” 석내과옆에 신축한 태동관은 청주의 대표적인 음식점이 됐고 청주화교들에게는 정신적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음력 설날을 연중 최대 명절로 치는 화교들은 아예1주일에서 보름동안 가게를 닫고 연휴를 즐기기도 했다. 설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화교소학교에 모여 수백명이 서로 새해인사를 나누고 성인남자들은 으레히 태동관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설날만 되면 우리 음식점이 완전히 꽉찰 정도였다. 하루 세끼 같이 먹고 중국의 전통오락과 마작을 하면서 밤을 새곤 했다.

그땐 청주에만 화교들이 500명도 넘었으니까, 열심히 모였고 즐겁게 어울렸다. 지금은 설날에 며칠씩 쉬기도 힘들고 함께 마작할 친구가 없다’ 이씨를 포함해 청주에 남아있는 화교 1세대는 두세명에 불과하다. 일부는 대만으로 돌아갔고 미평동 화교 공원묘지에 묻힌 사람만 80명에 육박한다.

슬하에 2남3녀를 둔 이씨는 한의사인 장남 동승씨가 청주 동생한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자식들은대만이나 미국등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고령의 나이가 힘에 부쳐 지난 96년 태동관 문을 닫고 45년의 현역생활(?)을 마감한 이씨는 새벽부터 하루 두차례씩 산행을 하는등 건강관리에 여념이 없다.

덕분에 지병이었던 당뇨도 정상수치로 회복된 이씨는'이제 한국땅에 뼈를 묻을 일만 남았다’ 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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