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호 광복회 충북도지부장

“조선·동아일보가 마치 사주들이 친일행위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유감이다. 애초 광복회가 최종 명단에서 방응모·김성수를 제외시킨 것은 해방후 건국과정에 공로가 크다고 생각해서 일단 유보한 것이다. 결코 친일행위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경성호지부장(75)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발표에 대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청주사범학교 졸업 후 40여 년간 교직생활을 하다 지난 93년 교장퇴임한 경지부장은 10년째 광복회를 이끌고 있는 큰어른(?)이다. 동전 한닢 수입도 없는 자리지만 독립유공자 후손의 자긍심을 지키며 매일처럼 봉명1동 광복회관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언젠가 은행에 갔더니 여직원이 통장을 들여다보면서 ‘광복회씨’ ‘광복회씨’라고 부르는데, 얼굴이 화끈했다. 한마디로 광복회 존재조차 모르는 일반인이 많다는 얘기다. 솔직히 독립유공자 2세대는 정규대학을 나온 분이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활동하거나 국내에서 감시당하며 생활하다보니 후손들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교사로 봉직하신 경지부장님이 인품과 열정으로 우리 단체를 이끌어 오셔서 이만큼 자리잡게 됐다” 인터뷰에 합석한 도지부 김백호사무국장(64)은 경지부장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애써 설명했다.

광복회 목소리는 있었는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의 단체인 광복회가 일반에 제대로 존재를 알리지 못한 것은 내부의 탓도 있지 않을까 반문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보수적인 친정부 단체로 목소리를 낸 것이 자승자박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해방 57년을 맞은 올해서야 비로소 708명의 친일명단을 발표한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솔직히 친일파와 후손들이 더 힘을 쓰고 사는 세상에서 광복회가 말할 기회가 있었는가? 이미 정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역사를 덮어둔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DJ 취임이후 98년 8·15행사 때 처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리에 대한 학술발표대회를 우리 광복회 주최로 열었다. 이후 1년간 사료조사를 통해 900명의 명단을 확보했고 자료근거가 확실한 692명을 국회의원 모임에 전달한 것이다. 친일행위자를 처벌하자는 목적이 아니고 단절된 역사를 매듭짓고 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경지부장은 ‘처벌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다’고 연거푸 강조했다. 그만한 연배에서 간직하고 사는 한국적 온정주의는 아닐까, 여겨졌다. “미국이 2차대전이 끝난후 일본에 대해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고 했던 것처럼, 민족내부간의 앙금을 털어버리자는 것이다. 따지고보면 박정희 대통령도 일본육사 출신으로 일제에 부역한 사람이다. 이런 점을 숨기지말고 정직하게 역사에 기록하되 한국 근대화를 이끈 공적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박정희기념관 반역사적 발상

박대통령이 언급되자 옆자리의 김사무국장이 목소리를 치켜세웠다. “박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고 빈곤을 추방한 것은 큰 공적이다. 하지만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는 발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일파일 뿐만아니라 어찌됐든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빼앗은 사람인데, 어떻게 후세들의 교육장이 될 개인기념관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재 광복회충북지부 회원은 127명, 그동안은 건국훈장 이상의 서훈을 받은 유족에 한해 직계손 1명에 대해 회원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가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자까지 연금수혜폭을 확대시켜 광복회충북지부 회원수도 30여명이 더 늘어나게 됐다. 연금혜택도 과거에는 해방전 작고한 경우 증손자까지, 해방후 작고한 경우 손자까지로 규정했으나 1973년 박대통령이 ‘독립유공자 손자’까지로 수혜범위를 축소시켰다는 것.
“손자까지로 제한해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향후 30년안에 광복회 조직이 해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유족회 성격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친일파 자손들은 국가를 상대로 재산찾기 소송을 벌이고 있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그나마 연금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파 재산몰수법과 친일후손 공직제한법이 광복회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민족을 담보로 생전에 호의호식한 친일파와 그 재산으로 부귀를 누리는 후손들에 대해 응분의 제재를 가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청주 순국선열 추념탑 건립 추진

“반민족행위자의 자손들이 고위공직자와 같은 지배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민족정기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물론 연좌제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최소한 친일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국가가 환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올해 청원군 문의면 3·1절 기념행사장에 다녀온 경지부장은 어린 학생들이 횃불을 들고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감회가 남달랐다고. “항일독립정신에 대한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에 그 어린 학생들이 열성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청주에서는 기독교 민간단체인 충북사랑회가 작년부터 자비를 들여가며 청주 성안길 일대에서 3·1절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즉석 연극을 통해 만세운동을 재연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모습이 그 어떤 공식행사보다 보기 좋았다. 역사를 잊지않은 후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광복회충북지부는 지난해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충북출신 독립유공자 353명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추념탑 건립계획을 세웠다. 서울 독립공원에 세운 것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도민성금과 자치단체 지원금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조감도까지 완성했지만 부지확보등 자치단체와 협의할 부분이 많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 권혁상 부장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