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겨누던 칼 거두고 방패 역할로 변화
특정인 모시려 정기주총 뒤 6일만에 임시주총

공직경험 바탕 대형 법무법인·유관기관으로 이직, '노후걱정 없네'
대기업 행정처분 내릴 기관 감사의 속마음에는 '훗날 내 직장인데''

연금복권이 인기다. 출시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로또일색이었던 복권시장에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았다. 주 구매층은 40~50대 직장인들이라는 것이 복권방업주의 말이다. 당첨되면 20년간 500만원. 세금을 내고도 39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오니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혹 할만 얘기다. 이러한 연금복권 인기 뒷면에는 노후불안이라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다. 퇴직 이후에도 쓸 돈은 많은 반면 모아둔 돈은 많지 않고 재취업은 어려운 이 불편한 진실.

하지만 퇴직 이후에도 재취업 걱정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고위공직자들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5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신학용의원에게 제출한 ‘2008년~2011년 퇴직 공직자 재취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감사원에서 퇴직한 29명의 공직자 중 17명이 금융기관에 재취업 했다. 이들은 상임 감사위원원직을 맡거나 이사 혹은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과연 본연의 의무인 감독하고 감사하는 역할을 잘 수행할지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다. 칼을 들었던 감사원 공직자에서 금융기관의 방패로 변신하는 것은 아닌지.

어디 감사원만 그럴까. 충청리뷰가 충북출신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들의 재취업 현황을 조사해 본 바도 다르지 않다. 감사원뿐만 아니라 기획예산처`공정거래위원회`등 다수 부처의 고위공직자들은 금융기관이나 유관기관, 대형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기관들은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대기업들은 권력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감사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식이다.
국가의 녹을 먹은 경험으로 퇴직 후 이들은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 힘들고 경력을 인정받아 새 직장 잡기 어려운 요즘 세대에 이들은 우아한 인생 2모작의 주인공들이다. <편집자>

지난 5월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고위 공직자들의 재취업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퇴직한 금융감독원 출신 고위 공직자들은 부산저축은행 감사와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은행 부실에는 눈을 감았다. 그 사이 저축은행을 택한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봤다.
퇴직 공직자들은 대형로펌에 취직하는 경우도 잦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5월 1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6개 대형 법무법인에 속한 고문과 전문위원 등 전문인력의 절반 이상이 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국세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다수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채 1년이 지나기도 전 새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종전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가 자신과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기업에 2년 동안 재취업 할 수 없지만 대형 로펌은 이 같은 규정을 받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은 현재 개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6일 발표된 부분 개각으로 공직에 재입성한 권도엽 국토부 장관은 지난 해 8월 국토부 차관으로 퇴직한 후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대형로펌에 고문으로 근무했다. 한 달 평균 급여는 2500만원, 그리 길지 않은 만 5개월 동안 1억2700만원을 받았다. 청문회 당시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자문료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관예우가 아니었냐는 것.

당시는 대기업의 소송과 자문을 도맡아온 대형 로펌들이 퇴직 공직자를 영입해 해당 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시점이었다. 지난 해 8월에도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15개월 동안 로펌에서 4억원이 넘는 자문료를 받아 비난을 샀고 1월에는 검사 출신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역시 로펌에서 받은 고문료가 문제가 돼 낙마했다. 이후 정동기 전 검사는 3월부터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으로 취업했다.

6일 만에 열린 임시주총, 무슨사연이…

고위공직자들이 퇴직 후 옮겨가는 자리는 크게 대형 로펌의 고문 및 전문위원과 금융기관의 감사 혹은 대기업 사외이사, 유관협회 정도다. 감사원이나 금융감독원 출신 공직자들이 대기업 또는 공기업과 금융회사의 상임, 비상임감사로 안착한다.
감사원 자치행정감사국 국장을 지낸 유구현(충주) 감사는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를 지냈다. 유구현 전 감사는 현재 한나라당에 입당해 충주시장 재보궐 선거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2008년 4월 부이사관으로 명예특진하며 퇴직한 감사원 사무처 정정필(청원)감사관은 이후 1개월 만에 스포츠서울 비상임 감사로 선임됐다. 이후 지난 1월 스포츠서울데일리가 모회사인 에이앤씨바이오홀딩스에 인수합병 될 때 같이 자리를 옮겼다. 이홍복(청원)씨는 감사원의 자치행정감사국 제3과장을 지냈고 지난 해 3월 서울도시철도공사 감사로 선임됐다.

임해종(진천) 전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국장은 4월부터 한국산업은행 감사로, 남기명(영동) 전 법제처 처장은 LG화학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조정관을 역임한 청주상고 출신 김광동씨는 우리금융 사외이사를 거쳐 지금은 두산중공업 고문을 맡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을 지낸 홍성욱(청원)씨는 제일기획 감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보호센터, 보험감독원 국장을 지낸 박종옥(청원)씨는 LIG생명보험 상임감사로 선임됐다. 김호용(옥천) 전 금융감독원 공시감독국장은 퇴직 이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투자증권 감사위원을 역임했고 삼정KPMG 부회장, 엘에스인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연해철(청주) 전 금융감독원 조사2국 국장은 삼성증권 고문을 지냈으며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국 실장`비은행검사2국 팀장을 거친 류영돈(청원)씨는 KB자산운용 상근감사위원을 지냈다. 충주고를 졸업한 강명원씨의 경우 육군본부 예산처장과 중앙경리단장을 거쳐 퇴역한 후 GB텔레콤 감사와 한국위기관리연구소 감사를 거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감사에 선임돼 일하고 있다.

또한 청주고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리스크검사지원국 국장 출신의 김종건씨는 한국씨티은행 상근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김씨를 감사로 선임하기 위해 주주총회를 1주일 동안 두번이나 열며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당초 지난 3월 25일 주주총회를 개최, 김씨를 감사로 선임코자 했으나 김씨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심사가 뒤늦게 잡혔다. 주주총회에서는 사외이사만와 당기순이익 배당액만 발표했다. 이후 다시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서야 김씨를 감사로 선임할 수 있었다.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지난 해 7월 신한금융지주의 제주은행 감사를 앞두고 제주도에 내려온 금융감독원의 검사반원들을 접대하기 위해 서울의 신한은행 감사가 출동(?)하기도 했다. 제주은행의 감사는 한국은행 출신이었으나 신한은행의 감사는 금융감독원 출신이었기에 닿을 수 있는 ‘끈’이 있었다. 이 같은 비위사실은 금감원 자체감사를 통해 드러났고 2차까지 동행한 세명은 견책과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름만 감사, 금융기관 방패

또한 지난 5월 부산저축은행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금융기관으로 이동한 금감원 출신인사와 현직 금감원 감사 사이는 냉정하기 어렵다. 금융기관 역시 금감원 출신을 영입하는 이유는 금감원 감사와의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일종의 로비스트인 것이다.
금감원 역시 전`현직 간부가 금융회사 감사로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는다. 당사자들도 마찬가지. 이는 업무 강도가 낮은 반면 연봉은 높아 떠나는 전`현직 국장들의 입맛에 맞고 남은 간부들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윤정 충북경실련 사무국장은 “이러한 현상이 마치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비단 충북 출신 인사들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최 사무국장은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금융기관에 재취업해 감사나 이사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더 큰 문제다. 이러한 문제가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라고 전했다.

이직인가 이적인가

고위공직자들이 또 다른 행선지는 유관기관 및 협회다. 국무총리실 정책분석평가실 실장을 지낸 신정수(청주)전 실장은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 농수산국토정책관을 지낸 신종은(제천)씨는 현재 한국바이오디젤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홍범식(보은) 전 재정경제부 재정자금과 과장은 재정경제부 생활물가과장을 거쳐 서울외국환중개소 전무이사를 역임했고 김철현(충주) 전 국정홍보처 주 홍콩총영사관 홍보관은 아리랑방송 마케팅경영본부 본부장을 맡았다가 최근 물러났다.
안효승(음성) 전 덴마크 대사는 농수산물유통공사 수출이사를 역임했고 오행겸(청주)전 공사는 미국대사관 공사와 주 벨기에 대사, 유럽연합대표부(EU) 대사를 거쳐 한국수입업협회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했다. 뒤이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통상자문대사를 맡고 있다.

오영환(진천) 전 영사는 오사카총영사관 총영사를 거쳐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국책사업기획단장을 지낸 장종식(제천)씨는 한국통합물류협회 상근부회장자리를, 최혁(영동) 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WTO 지적재산권협정 이사회 의장을 거쳐 퇴직 후 전경련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인섭(옥천) 전 금융감독원 공보실장은 인력개발실 교수를 거쳐 신한카드 상근감사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지난 7월 신용정보협회 전무로 선임됐다.

갑과 을의 관계의 전환

지난 5월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국내 6대 로펌의 퇴직공직자 취업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충북출신 공직자들을 찾아냈다. 이들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 경력을 살려 로펌에서 고문이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로펌 1세대 김인섭 변호사는 1936년 영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고려대 법대를 나와 서울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후 1980년 변호사 개업 후 1986년 법무법인 태평양을 설립했다. 은퇴 전까지 법인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김태구(청원)씨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이후 공직에 입문해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제한규제 개혁작업단 단장을 역임했다. 이후 CJ 텔레닉스를 거쳐 현재는 김&장 법률사무소 실장을 맡고 있다. 이영우(괴산) 전 심판관은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를 거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김동수(청주) 전 정보통신부 차관은 법무법인 광장에서 IT분야 고문을 맡고 있으며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청와대 경제비서관, 청와대 경제수석, 전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실장 등 요직을 거친 윤대희(괴산) 전 실장은 법무법인 율촌에 속해 있다.

정태익(청주) 전 대사는 외교안보연구원장과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 주 러시아대사를 거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법무법인 율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박홍기(영동)씨는 1985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안전정보과를 끝으로 법무법인 광장의 전문위원으로 영입됐다.

김미영 경실련 정치입법팀 팀장은 “공정위와 국세청, 금감원의 경우 대기업을 상대로 행정처분을 하는 기관”이라면서 “처분을 받는 대기업은 로펌의 주요고객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들어가면서 공직자들이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5월 조사결과에서 보듯 공직자들이 퇴직하면서 로펌에 재취업할 때 공백기가 채 1년이 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최신 조사기법과 인맥 등 정보에 밝을 수밖에 없는데 기관의 공직자가 대형 법무법인으로 옮기면서 전 기관은 무언의 압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조사에 참여하는 기관의 직원들도 내 다음 직장이 저곳이라는 마음이 들고 그 경우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 결국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감사와 이사 그 끝은 다시 공직?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에서 충북출신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들 역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업무강도는 낮고 연봉은 높은 그 자리도 만족하지 못하는 공직자들도 있다. 이들 몇몇은 다시 공직의 꿈을 꾼다. 정계로의 입성을 노리는 것이다.

유구현 전 감사가 지난 12일 자신의 고향인 충주에서 출마선언을 했다. 유 전 감사는 우건도 전 시장의 형이 확정되기 전부터 자신의 저서인 ‘복지가 미래다’의 출판기념회를 지난 달 7일 서울에서 가졌다. 이어 지난 달 21일에는 충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뒤 우건도 전 시장이 낙마하자 12일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으며 22일에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또한 공직 출신은 아니지만 한창희 한국농어촌공사 감사 역시 출마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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