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중앙노동위도 부당해고 판정…사측 “대법원까지 간다”
벼랑 끝 해고노동자 박홍중 씨 100m 굴뚝 위 고공농성 돌입

<현장리포트>부용면에 위치한 굴지의 제지 회사인 아세아제지가 지방노동위원회는 물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차 부당해고로 규정지은 사건에 대해 노동위의 결정을 무시한 채 4명의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어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자로 일방적 해고 통보를 전해받은 박홍중 씨(47·18년 근무)와 박웅기(52·25년 근무) 김성택(54·30년 근무) 김태학(51·25년 근무) 씨 등 4명은 부당 해고라며 아세아제지에 복직을 요구해 왔다. 4명의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8개월간 1인 시위를 벌이며 세상에 부당함을 알렸지만 회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18일 막내 격인 박홍중 씨 100m 높이의 아찔한 소각로 굴뚝을 타고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소각로 굴뚝은 해고노동자들이 적게는 18년 많게는 30년간 관리해오던 삶의 현장이었다. 굴뚝 아래 진을 친 아세아 제지 직원들은 박 씨의 행동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해 수개월째 크레인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흉내내기 쯤으로 치부했지만 박 씨의 결정 또한 삶의 벼랑 끝에서 벌이는 사투였다.

매출액 5년째 증가가 경영난?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려보자. 박 씨 등 4명은 아세아제지 보일러팀에서 함께 일해 왔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사측이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해온다. 해고사유는 ‘장래의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경영상 이유’다.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다음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20년 직장을 찾아갔지만 정문에서 저지당하고 말았다. 회사는 곧바로 아웃소싱으로 돌렸고, 그들의 일터는 계약직 노동자들로 대체됐다.

이에 대해 해고노동자들은 부당하다며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취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충북노동위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에 있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해고는 부당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판정했다.

사측은 이에 대해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의 판단도 다를 바 없었다. 중앙노동위는 더 나아가 판정문에서 “이 사건 해고는 나머지 점에 대하여 더 나아가 살펴 볼 필요없이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 해고”라고 규정했다.

노동위의 판결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세아 제지 측이 경영상 이유를 들었지만 최근 5년동안 매출액이 10%이상 꾸준히 증가했고, 2008년 경영난을 들어 동결한 임금과 지급되지 않았던 성과급도 지난해에는 5% 인상됐고 성과급도 100% 지급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73억원, 순이익은 51억원을 기록했다.

또 이들 4명을 해고하고 아웃소싱으로 전환하며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한편으로는 2010년 8명, 2011년 11명을 신규채용했다. 또 해마다 정년퇴직자들도 10명 가까이 발생해 충분히 인력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아세아제지의 해고는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했다.

현재 아세아제지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서도 패소한다면 아세아제지는 항소를 할 계획이다. 결국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가겠다는 심산이다. 아세아제지 관계자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여부는 법적인 판결이 모두 끝난 이후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지방노동위부터 시작하면 다섯번의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 만약 아세아제지가 연거푸 패소한다면 대법원 판결까지는 아직도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실업자 생활 9개월째인 현재도 이들의 가정은 심각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메아리도 없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투쟁에 몸도 마음도 수척해졌다.

100m 크레인 위에서 6일째 농성 중인 박홍중 씨는 현장에게 취재진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조용히 1인 시위를 진행했던 것은 그래도 20년간 근무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연 뒤 “회사는 행정재판 승소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로펌에 변호를 의뢰했지만 우리의 부당해고는 결코 뒤집힐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젊음을 바친 회사에서 그 공을 인정받고, 때가 돼서 축복받으며 은퇴를 하고자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100m 굴뚝 위, 매연·추위…그리고 외로움
음식은 밧줄로 공수, 용변도 그 자리에서…천막을 이불삼아

22일 긴 밧줄이 높은 굴뚝 위 연기를 뚫고 에어매트(안전장비)위로 떨어졌다. 1인 고공농성 5일째에 돌입한 박홍중 씨와 세상을 잇는 유일한 끈이다.  박 씨의 부인은 눈물을 닦으며 즉석밥을 데웠다. 속옷 몇 가지와 수건 한 장, 걸쳐 입을 옷도 함께 끈에 달아 올려 보낸 뒤 임 씨는 뒤로 젖힌 고개를 한동안 곧추세우지 못했다.

박 씨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먹었다. 걱정하지 마라.” 벌써 5일째다. 처음엔 단식농성을 할 요량이었지만 농성중임을 알게 된 아내의 성화와 장기화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일단 식사는 하기로 했다. 박 씨에게는 5일만의 첫 끼니였다.

박 씨는 어떤 이들이 말하는 전문 데모꾼이 아니다. 아내와 3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시멘트바닥에 앉아 식은 밥을 먹고, 잠까지 해결하는 것이 익숙할 리 없다.

박 씨는 취재진과의 현장 전화통화에서 “견딜만하다. 소변은 한쪽 귀퉁이에서 보면되고 잠은 천막을 펴 지붕을 만들고 잔다”고 하면서도 “아직은 한낮의 더위가 있지만 오히려 새벽 무렵의 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오늘에서야 처음 식사를 해 아직까지 대변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있는 곳은 100m 높이의 소각장 굴뚝 꼭대기 난간이다. 굴뚝을 따라 동그랗게 이어진 난간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폭이다. 그는

▲ 아세아제지 해고노동자 박홍중 씨가 지난 18일 자신이 관리했던 소각장 굴뚝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했다(사진 맨위). 사진은 취재진의 요청으로 박 씨가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 것. 사진 가운데는 잠을 자는 공간이다. 회사 밖에서는 부인(사진 맨아래)이 박 씨를 위해 즉석밥을 데우고 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 그는 “잠자리나 식사 등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 불편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굴뚝을 통해 나오는 매연과 가스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여과기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이곳 연기는 다이옥신 등 인체에 유해한 것들이 다량 함유돼 있다. 속이 메스껍고 눈이 아프다. 여기 올라와보니 회사가 그동안 정상적으로 유해가스 배출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단절된 공간이라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다. 그는 “수개월 동안 복직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곳의 생활이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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