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 도종환 시인.
부드러움과 강직함 속에 녹아드는 맑고 투명한 서정적 시어로 개인과 시대를 모두 껴안았던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인(57)의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가 5년 만에 출간됐다.

한 유명 교수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책에서 사람의 수명을 여든으로 보고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눴을 때, 20대는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오전 6~9시 사이라며 취업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준 바 있다.

그보다 앞서 지난 2007년 창비 가을호에 실린 도 시인의 시,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그는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고 노래했다.

도 시인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치열하고도 찬란했던 하지만 뒤편에 벌레 먹은 자국도 많았던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그에게 다가올 저녁노을 녘 풍경을 담담하고도 사뭇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일생을 사계절로 비유할 때도 가을에 해당할 수 있는 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유독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을 오후'에선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라는 표현에 대해 도 시인은 2일 <충청리뷰>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람이 쓸쓸해질 때 마음이 선해지지 않으면 진정한 사람 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과 아픔들을 지나치지 않는다.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그해 여름'에선 '경찰과 깡패가 한 개의 방패 뒤에 저희/ 그림자를 가리고 발맞추어 지나가고 나면/ 신문은 무기가 된 활자의 볼트와 너트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구 던졌다/ 슬퍼하는 이는 넘쳐 났으나/ 잘못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이 여름이 지나가고/ 숲의 나무들만 여러 날씩 몸부림치며 울었다'라고 표현했다.

'카이스트'에선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 카이스트보다 더 진도가 나간 인생들도 이 밤 혼자 쓴잔을 마시며 빗발 몰아치는 숲의 나뭇잎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겨우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하루하루 끔찍한'이라고 표현하며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에 시인은 아파했다.

또 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동료 박영근 시인에게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숨과 맞바꾸는 못난 꽃/ 너 떠나고 참으로 못난 꽃 하나 지상에 남으리라/ 못난 꽃,'이란 '못난 꽃(부제: 박영근에게)' 헌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박영근 시인이 문학에 목숨 걸고 치열하게 살았으나 문학이 잘 안 된다며 곡기를 끊고 술로 인해 몸도 많이 망가져 세상을 떠났다"며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 하는 마음으로 쓰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도종환 지음/ 창비/ 132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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