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 ‘이철수 목판화 기획 초대전’ 성황
‘촌철살인’ 이야기가 있는 작품 113점 전시중··청주 11월 전시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온전히 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땀없이 먹고사는 삶은 빌어먹는 것만도 못하다···호미놓지 말아라!’ ‘키 큰 나무들의 숲에서는 비좁게 서서 키를 다툰다. 숲밖으로 겨우 얼굴만 드러내고 사는 것들! 허명의 삶이 이럴까?’ 이철수 판화가(57)가 판화에 새긴 글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그의 글은 한마디로 탁 쏜다. 별 생각없이 살다가 한 대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 작품 ‘새는 온 몸으로 난다’와 판화가 이철수.
지금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 가면 ‘이철수 목판화 30년 기획초대전’을 볼 수 있다. 6월 22일~7월 12일. 그는 지난 81년 관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다. 이후 서울·부산·대구·광주·청주·독일·미국 등지에서 많은 전시회가 있었다. 갤러리로 나온 작품들은 고르고 고른 113개 작품. 그래서 이번 전시는 아주 특별하다. 작가는 자신의 판화를 보고 ‘내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이라고 표현했다.

판화가 이철수의 세계는 독특하다. 일찍이 그와 같은 형식의 판화작업을 한 사람이 없었다. 일명 ‘이야기판화’의 새 장을 열었다. 그리고 한국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다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 30년 동안 제작한 판화작품만 최소 2천여 점, 그 외 벽화와 엽서그림 등을 합치면 5천여 점이 넘는다. 거의 이틀에 한 점씩 작품을 만들어 온 셈이다. 그리고 지난 2002년 ‘가을편지를 드립니다’로 시작한 온라인 공간(www.mokpan.com)의 ‘나뭇잎 편지’는 이제 등록회원 수만 6만 명이 넘었다. 또 ‘응달에 피는 꽃’ 등의 판화산문집과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등의 엽서산문집 등도 펴냈다. 판화산문집은 일본·중국에서도 출판됐다.

판화가 이철수는 조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말소리도 조용조용하다. ‘높이날아 멀리가는 새들. 혼자서는 못가는 길인걸 안다. 날개짓이야 쉼없이 혼잣일인 줄도 알지. 그래도 혼자서는 못가는 길인걸···’ ‘저물도록 일했습니다. 이제 들어가자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 부릅니다. 밥은 달고 잠은 깊을 겁니다’ 등의 판화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움직인다.

“할머니 이야기 듣듯 하라”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는 “이철수의 그림은 이야기 중의 이야기다. 나는 때로 그의 그림에서 문학작품들보다 더 뚜렷한 이야기의 특징을 본다. 그의 작품에서는 화자의 몸짓과 표정이 선명히 느껴진다. 인쇄체가 아닌 직접 칼질해 만든 글자가 그 역할을 한다”면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것처럼 그의 이야기에는 푸근한 삶의 체온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이 미술이니, 문학이니, 민중미술이니, 禪미술이니 구분하고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평했다. 그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듯 편안한 마음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는 길을 걷다가, 밭일을 하다가, 눈길을 걸으며 느껴지는 생각들을 작품에 쏟아낸다. 그런데도 심오하고 진지하다. 평론가 이주헌 씨의 말대로 할머니에게서 듣는 것처럼 구수한가 하면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작가는 이에 대해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안의 주인을 찾으라는 뜻에서 이야기를 한다. 돈 벌자고, 이름을 얻자고 허둥대다보면 자기존재는 실종되고 만다. 내가 작품에 표현하는 것은 평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고 밝혔다.

지금부터 30년전 관훈미술관에서 열렸던 첫 전시회 포스터
한 때 그는 격정적이고 다소 ‘과격한’ 그림을 그렸다. 80년대에 그린 그의 초기작품을 보면 지금 당장 싸우러가야 할 것만 같다. 시대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폭압적 사회에 던지는 저항의 언어와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선묘로 판화작업을 했다. 출판미술운동을 하면서 암울한 현실을 바꿔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중운동단체나 문화운동단체 등에서도 그의 판화작품들이 많이 쓰였다. 그는 공감할 만한 단체나 이슈가 좋은 일에는 선뜻 작품을 내주었다. 국민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울분을 달랬다. 사람들은 관훈갤러리 3층 전시장에서 당시 그림들을 보며 종종 감회에 젖는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의 글씨체도 ‘이철수 목판 글꼴’이라는 이름으로 컴퓨터상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앞으로 ‘무문관’ ‘대종경’ 책을 연작으로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전은 정동진·전주를 거쳐 11월에 청주로 온다. 청주예술의 전당에서는 오는 11월 15일~21일 전시가 열린다.

‘이철수 목판화 30년전’ 가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열광, 너도 나도 ‘사인’부탁

인사동 관훈갤러리 앞마당에 이철수 작가가 앉아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 마당에 탁자를 몇 개 배치 했는데 작가는 거기 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작가를 알아본 관객들이 인사를 건넸다. 팸플릿과 도록을 가져와 사인을 부탁했다. 더러는 인터뷰 하는 중에도 치고 들어와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사진도 찍었다.

‘이철수 판화전’은 여느 작가 전시와 사뭇 달랐다. 평범한 사람들이 열광했다. 전시 개관일에는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찾아왔지만, 이후 이 곳을 메우는 사람들은 평범한 이웃들이다. 말이 없는 작가 대신 부인 이여경 씨는 “일부러 휴가내서 오는 직장인, 자녀들 결석시키고 데리고 오는 부모, 오형제가 전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가족, 전시장이라고는 처음 와 보았다는 시민들이 온다. 거제도, 울릉도에서 오는 관객들을 보고 정말 감격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작가는 한마디 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 또한 평범하게 살고 싶다. 우리동네에서는 내가 작가인지도 모른다.” 옆에 앉은 사람이 “그림값이 싸다”고 하자 그는 또 “마음같아서는 더 싸게 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87년 충북 제천군 백운면으로 내려왔다. 아무 연고가 없었지만,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그는 충북사람이 됐다. 현재 논·밭 합쳐 2000평 농사를 짓는다. 그는 농사짓고 판화작업하는 게 전부다. 여기저기 이름 걸어놓는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해 오래전부터 충북민예총만 관여한다. 작업에 대한 답변도 명쾌하다. “농번기에는 일을 많이 하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작업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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