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국민들처럼 체면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도 흔치는 않을 듯 합니다. 관존 민비, 장유유서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경향이겠지만 여러 행사장엘 가보면 예외 없이 문제가 되는 것이 ‘좌석배치'입니다.

국제·국가행사 같은 대형 행사에서야 그런 일이 드물다 하더라도 지방의 군소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치고 좌석이 골칫거리가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행사에 초청된 웬만한 내빈이라면 그가 누구이던 우선 자신의 좌석에 신경을 쓰는 것이 상례입니다. 좌석이야말로 참석자의 신분이나 자존심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측은 무엇보다 자리를 어떻게 배치하고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게 하느냐를 놓고 부심 하기 마련입니다.

자리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1960년대 군청 소재지 행사장에는 어김없이 군인이나 정보기관원이 버티고 앉아 있는 게 관례였습니다. 군사쿠데타로 탄생한 정권이다 보니 정보기관원과 군인의 위세가 대단했던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장교도 아닌 일개 사병이 국회의원, 군수, 경찰서장과 나란히 앞줄에 앉아있는 모습은 누가 보든 민망한 것이었습니다. 정작 앞에 앉아야 할 나이 든 교장선생님은 뒤편으로 밀려 나 의자도 없이 서있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러 해 뒤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대통령의 처남이었던 육모 국회의원이 그런 실정을 청와대에 보고함으로써 모든 행사에서 교육자를 정중하게 예우하라는 특별지시가 떨어졌던 것입니다.

사실 박대통령도, 부인 육영수여사도, 처남인 육모의원도 모두 교사 출신이었습니다. 대구 사범을 졸업한 박정희씨는 일본 육사에 가기 전 문경에서 잠시 국민학교 교사생활을 했던 터라 평소 교육자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습니다.

박정희씨는 또 대통령이 되기 전 군시절 회식자리 같은데서 늘 끝자리에 앉기를 자청했고 남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겸손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공과(功過)의 평가가 어떠하든 박정희씨는 카리스마와 함께 ‘인간의 냄새’가 나는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각종행사에서의 내빈소개 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최측으로서야 행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이런 명사가 참석했다는 것을 자랑삼아 소개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소개되지 않는 더 많은 참석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뿐더러 예의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여러 행사장을 다녀 보지만 호명의 순서, 참석자 누락, 호명자 부재, 지각 참석자 추가소개 등등에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몇몇 사람의 낯을 내주기 위해 왜, 많은 사람들이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 행사 주최자들은 생각을 해 봐야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과시욕 같은 것을 가지고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단(壇)아래 보다는 단위에 앉기를 바라고 뒷좌석보다는 앞좌석에, 옆자리보다는 가운데자리에 앉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모두들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만 합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끝이 없는 혼란 속에 수라장이 되다시피 한 것은 서로가 높은 자리에, 앞자리에, 가운데 자리에 앉고자하는 데서 연유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너나없이 모두가 ‘좋은 자리’만을 탐하는데 어찌 세상이 조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 몸을 온전히 보존하려거든 몸을 낮추고 이름을 숨기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몸을 높이려고만 하고 이름 내기만을 좋아들 하니 이 어찌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본사고문 kyh@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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