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체육예산 90% 발전기금 55% 운동부에 지출

지난 1월말 청주 아이스링크에서 제19회 충북빙상경기연맹회장기 및 제24회 교육감기 빙상경기대회(쇼트트랙)가 열렸다. 그러나 주최측인 빙상경기연맹 회장단과 도교육청 관계자들은 개회식 시간이 되도록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입상선수에게 전달한 상장, 메달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개회식도 생략한 채 예정보다 40분이 경과된 후에야 경기가 시작됐다. 참가 학생들의 가슴엔 멍이 들었고 학부모들도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른바 대회를 위한 ‘선수 만들기’ 중심의 학교체육이 정작 대회장에서 어떻게 홀대 받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학교 운동부는 도교육청이 학교별로 지정종목을 정해주면 관례대로 해당 팀을 구성한다. 또한 학교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갹출한 학교발전기금의 상당 부분을 학교 운동부 운영에 쏟아붇는다. 더구나 같은 종목을 육성하는 초등학교간에 선수 빼돌리기까지 벌어진다. 이같은 현실은 심신수련을 위한 교육목적의 학교체육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전교조충북지부가 올 임단협에서 제시한 학교체육 정상화 방안을 중심으로 문제점과 대안을 점검해 본다.

현행 학교체육 정책은 선수육성을 위한 엘리크 체육정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선수발굴을 명목으로 각급 학교별로 기본종목 지정종목 육성종목을 정해 의무적으로 팀을 구성토록 하고 있다. 도내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규모에 따라 군지역은 2개 종목, 시지역은 3개 종목 정도 지정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고교는 학교별로 1~2개 종목을 지정 육성토록 하고 있다.

지정종목 제도의 부작용은 우선 선수선발과 학교예산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교육청에서 지정종목 ‘하명’을 받으면 일단 팀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구기종목의 경우 10~2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자체가 교사들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청주 초교교사 A씨는 “기존에 팀이 구성돼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면 자발적으로 선수하겠다고 나서는 학생들이 있지만, 문제는 신설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학생, 학부모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핵심 포지션의 아이가 중도에 포기하면 부모들에게 죄인처럼 찾아가서 통사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초교의 경우 학교예산을 물론 학부모들이 갹출하는 학교발전기금의 상당부분이 학교 운동부 운영예산으로 지출되고 있다. 청주 Q초등학교의 2004년 예산안을 보면 교수학습활동비 가운데 체육부에 편성된 액수는 2647만원이다. 이 가운데 3개 지정종목에 대한 출전비, 간식비 등의 예산이 2380만원으로 전체 90%에 달한다. 나머지는 보건교육활동지원 114만원, 체육교구 용품구입비 267만원이 고작이다. 전체 학생의 5%에 불과한 선수들이 90%의 체육예산을 쓰는 셈이다.

Q초등학교에서 작년도에 모금한 학교발전기금은 1976만원이었으나 학교체육활동지원비로 1091만원이 지원돼 55%가 학교 운동부 경비로 지출됐다. 1091만원은 전액 전담코치 인건비로 쓰고 있다. 이에대해 청남초 박대규교사는 “지정종목은 소수의 선수학생을 위해 돈(예산) 인력(교사) 시설(운동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공교육을 갉아먹는 구조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지정종목 제도다. 선수들은 대회을 앞둔 시점에 학교수업을 빼먹기 일쑤고 대회 당일에는 담당교사가 수업을 하지못해 일반 학생들까지 학습권 침해를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교사는 현행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각급 학교에서 지정종목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운동부의 설치운영은 학교운영위의 심의를 받아 결정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학운위에서 반대하면 설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청주 청남초는 지난해 여자핸드볼 지정종목을 거부했고 용암초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주도로 유도부 지정종목을 반납했다.

또한 지정종목 제도를 유지하겠다면 운동부의 훈련에 필요한 시설과 비용을 교육청이 부담하고 전담코치, 순회코치도 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각급 학교와 교육청에 맡겨진 선수육성 책임을 체육협회로 이관해 도체육회가 총괄 책임을 지고 시도 연맹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종 경기대회를 상당 부분 줄이고 선수 참가를 강요하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정 종목에 대한 경기대회에 불참할 경우 학교장이 사유서를 작성하는등 압박을 받게되고 심지어 성적이 부진할 경우 전담교사가 경위서를 쓰기도 한다는 것. 선수위주 학교체육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클럽대항 체육활동도 학교간 경기대회를 치르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박대규교사는 "5인 축구 경기를 예로들면 운동장 사정이 여의치 않은 도시지역 아이들에게 적합한데 언제부터 학교간 대회를 치르다보니 참가예산, 전담교사가 필요하고 성적독려등 지정종목의 폐해가 반복됐다. 가능한 클럽대항의 시합을 하고 학교간 경기대회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히 합숙훈련의 비교육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천안 운동부 합숙소 화재사건이후 초등에서는 사라졌지만 중고등에서는 합숙훈련이 일반화된 실정이다. 합숙훈련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물론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시킨다. 지난해 청주 Q초등학교 축구부 학생들의 집단전학 사태의 배경에도 경제적인 논리가 깔려있다. Q초교에서 애면글면 축구부를 육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6학년 학생 위주로 5명이 한꺼번에 영동초교로 전학을 갔다.

학부모 W씨는 “청주에서는 대성, 운호중학교를 진학할 수밖에 없는데 학부형들간의 얘기가 한달에 60~70만원가량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동중학교에서는 숙식등 모든 지원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20~3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대성 운초중에서는 1~2학년 아이들이 주전으로 뛰기가 힘든데, 영동중은 입학부터 선수출전이 가능해 기량을 키우는데도 유익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부의 훈련비, 대회 참가비 부담이 학교예산, 발전기금으로도 모자라 선수 학부모들의 주머니돈까지 보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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