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길거리 돈 주우러 다니는 신세 못 벗어나 '한숨'
"그날 운 좋아야 벌이 되는 운수업" 자조 섞인 목소리도

법인택시 1일 동행취재기

지난 해 7월 청주 법인택시 운전사들에게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 법인 택시기사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고 이용하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기대한 취지였다. 하지만 제도 도입 후 법인택시 회사들은 물가와 인건비상승 등을 이유로 사납금을 인상했다. 법인별로 사납금 차이는 있지만 교대로 차량을 탈 경우 1인당 7만 5000원 선이다. 이를 채우지 못하면 택시기사가 자기 돈으로 메워야 한다.

▲ 지난 4일 김장순씨를 만나 택시기사의 하루를 동행해 봤다. 사진은 김씨가 출발 전 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
그렇지 않아도 인상된 기본요금으로 승객이 줄었다고 고민이던 택시기사들은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에도 생활여건은 변함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법인들은 가스값 마저 택시기사들에게 자부담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택시기사들은 천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식사도 서둘러 먹어야 한다. 심지어 커피 값 까지 아껴야 겨우 사납금을 내고 하루 2∼3만원을 벌어 갈 수 있다.

지난 4일 화성택시에서 일하는 김장순(55)씨의 택시에 탑승해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했다. 김 씨는 올해로 11년째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 그는 천직으로 여겼던 군을 제대하고 택시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10년 정도 일하면 개인택시를 몰 줄 알았는데 올해가 벌써 11년째다. 그는 "택시총량제를 앞두고 개인택시 신청은 밀려 있고, 자리는 없다”며 씁쓸해 했다.

▲ 아침 10시면 손님이 줄기 때문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한다.
-오전 11시
김장순씨를 만난 곳은 청주 가경동 한 초등학교 후문에서였다. 이날은 김 씨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맞벌이하는 아들부부를 대신해 그가 손자를 챙기는 일은 잦다.
그의 하루는 보통 오전 7시부터 다음 운전자와 교대하는 오후 7시까지다. 오전 9시부터는 손님들이 급격히 줄기에 출근길 손님을 많이 태우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오전 10시경에는 잠깐 눈을 붙이며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부지런히 손님을 찾아다닐 시간에 앞바퀴에서 소리가 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 정비소에서 고장여부를 확인했다. 하루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의 이후 벌이가 중요해졌다.

-오전 11시 15분
가경동의 한 할인마트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죽림사거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마트 앞에는 콜벤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하나같이 트렁크를 열고 있었다. 김씨는 “불법 주정차단속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저러고 있다”며 “콜벤의 불법영업으로 택시들이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30분
두 명의 손님을 내려 주고야 김 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주위를 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1시간에 손님을 4차례 태우면 그래도 잘 된 운행이다. 기대해보자"며 석남교를 지나 2순환로 행을 택했다. 택시는 하이닉스 앞 승강장에 섰다.
김 씨는 “왜 택시를 운수업이라고 하는 줄 아느냐. 그날 운이 작용해서 운수업이라고 한다"며 농담을 던졌다.

-오후 12시 4분

▲ 이날 점심식사는 칼국수였다. 김씨는 되도록 국물섭취는 자제했다.
택시를 탄지 이제 한 시간, 피곤과 허기가 몰려왔다. 김 씨는 "청주시내 동네마다 싸고 맛있는 집들을 알고 있다. 식사는 그저 발길 닿는 곳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무엇을 먹고 언제 먹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손님 행선지에 맞춰 먹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 손님이 내리고 차량은 성화동KBS 근처로 움직였다. 점심메뉴는 칼국수, 시간은 낮 12시 30분이었다.

그는 “밥 때를 놓치면 손님도 놓친다"며 "간혹 점심시간 무렵 손님들이 연달아 있는 일이 있다. 그럴 때 밥 먹으러 간다고 손님을 태우지 않으면 식사 후에는 손님이 거짓말처럼 없다"며 말했다. 법인택시 기사들의 식사시간은 자연스레 불규칙적이게 되고 어떤 기사들은 그 시간마저 아끼려 택시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한다. 화장실도 식사시간 때를 이용하고 운행 중 소변횟수를 줄이기 위해 음료는 먹지 않는다. 위장병은 택시기사에게는 훈장이다.

-오후 2시 20분
사창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조심스럽게 사납금 이야기를 꺼냈다. 이때까지 그의 수입은 4만원이 조금 안됐다. 그는 "하루 사납금 7만 8000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자기 돈을 밀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신동 농협 앞 아이 손을 잡은 30대 젊은 아주머니가 택시를 세웠으나 이내 조수석에 앉아 있던 기자를 보고는 뒤차로 향했다. 남자 둘이 앞에 타고 있으니 오해 할만도 했다. 김씨는 "괜찮다"며 웃었다. 얼마 뒤 가경동 세원 3차 아파트에서 콜이 들어왔다.

-오후 2시 50분
택시기사들이 꺼려하는 손님 중 하나는 취객이다. 행선지도 불분명하고 요금관련 시비가 붙는 일도 빈번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서 지구대에 가도 마땅한 수는 없다. 김씨는 "어떤 때는 경찰이 왜 취한 사람을 데려왔느냐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며 "간혹 술에 취해 택시요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는 손님이 즉결심판에 서는 경우도 있지만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보상해주지는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이후

▲ 몇 시간의 동행이었지만 차안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김장순씨는 보통 하루에 11시간 택시를 탄다.
LPG충전은 교대 전 사창동에 위치한 한 충전소에서 이뤄진다. 정부가 가스값 220원을 보조하고 법인택시회사가 가스값을 내주고 김장순씨의 부담은 없다. 이때 얼굴을 보기 힘든 동료들을 마주하며 마시지 못한 커피 한잔을 나눈다. 그가 하루에 소비하는 가스량은 35ℓ정도. 거리로 따지면 220km, 이를 11시간에 걸쳐 다닌다.

이날 그는 오후 7시까지 주행을 무사히 마쳤고 다음 근무자에게 차량을 인계했다. 그는 택시기사의 삶을 "사는 게 다 어렵지만 누군가 택시기사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길에 흘린 돈 주우러 다니는 거지와 같다"고 말하며 씁쓸해 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