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장두노미(藏頭露尾). 교수신문이 뽑은 지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다. 해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모든 언론이 빼놓지 않고 보도할 만큼 주목을 끈다. 세태를 절묘하게 풍자하는 사자성어를 대할 때마다 무릎을 치지만 한편으론 불편하다. 너무 어려운 말들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짧은 걸 탓해야 할까. 하지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자성어가 새해 지역신문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그동안 이렇게 사자성어를 많이 썼나 싶을 정도로 많이 기사화 됐다. 시작은 충청리뷰가 10대 뉴스를 사자성어로 정리하면서부터다. 충청리뷰는 어떤 것은 현상 자체를, 어떤 사안은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을 담은 소중한 네 글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열개의 사자성어를 보고 나는 ‘아연실색’ 했다. 한마디로 참 놀랐다.

설니홍조(雪泥鴻爪), 망양득우(亡羊得牛), 만리전정(萬里前程), 즐풍목우(櫛風沐雨), 부답복철(不踏覆轍), 하석상대(下石上臺), 갈택이어(竭澤而漁), 복수불수(覆水不收), 당랑재후(螳螂在後), 상궁지조(傷弓之鳥). 죄다 모르는 말이다. 어쩌나 싶어 기사를 한참 들여다봐야 했다. 그뿐이다. 충청타임즈도 충청권 현안들을 사자성어를 뽑아 정리했다. 게다가 단체장들도 각각 새해 계획들을 사자성어로 내놓았다는 사실들이 보도되면서 신문지면에는 한자가 홍수를 이뤘다. 한문공부 좀 하신 분들은 반가웠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독자가 과연 많았을까 싶다.

해마다 대통령부터 자치단체장과 기관장까지 모두 신년 휘호를 내놓는다. 이들이 내놓은 사자성어를 보고 있자니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대로만 실천했다면 나라꼴이 왜 이럴까 하고 딴지를 걸 게 된다. 이런 문화가 왜 생겨났는지 이상하다. 권위나 전문성이 있어 보여서?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사자성어로 멋 부려보는 것일까. 마냥 멋있게만 보이지도 않는다. 듣는 이가 공감하지 않거나 그 의미를 왜곡시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때론 욕까지 얻어먹는 경우도 많다. 의미야 어찌됐든 실천 여부와 상관없이 신문들이 이들이 내놓는 사자성어를 보도해주니까 이런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자성어뿐만이 아니다. 신문에는 중국말(한자)이 넘쳐 난다. 한겨레신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기사제목에도 한자를 쓰는 신문들이 많았다. 한자 때문에 신문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자를 주로 쓰는 신문들은 그래야 품위가 있고 권위가 있다고 여겼다.

또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나 기자들은 지식인으로서 한자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신문은 사람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말이 아닌 권력층들의 말만 담아냈으니까. 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은 여전히 가르침으로만 남아 있다. 지식인들과 관료들의 말이 백성들의 말과 달라서 민주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글을 쓸 때마다 우리말로 써도 되는데 중국말이나 외래어를 쓰진 않았는지, 나의 삶과 글이 어긋나지는 않는지 늘 되돌아본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나저나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화두로 ‘일기가성(一氣呵成)’을 꼽았다. 일을 단숨에 해낸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반면, 교수신문은 올해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뽑았다.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라는 뜻이란다. 귀한 백성 대접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대통령이 말한 사자성어 뜻대로 되면 어쩌나하고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괴로울 뿐이다. 백성 노릇도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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