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충청리뷰 참여연대 공동기획>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MB정권
3% 규모의 작고 소외된 충북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불공정

평등사회를 꿈꿨던 이론상의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실험에서 실패했다. 역사는 진행 중이니까 ‘아직까지는’이란 단서가 붙어야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아직은 꿈과 같은 것이라면 공정사회는 한번 도전해볼만한 가치다. 다행히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도 곧 공정사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있는 표정과 말투로.

공정사회는 흔들리지 않는 룰(rule)이 존재하는 사회다. 누구든 각자의 분야에서 노력을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다. 대통령도 노력해서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우리사회가 성숙한 공정사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공정사회에 근접해있는 것일까?

또 대한민국 안에서 인구도, 경제도 3%의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충북은 다른 시·도와 비교해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청주·청원이 비대해져가는 만큼 위축돼가고 있는 나머지 시·군은 충북 안에서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집단에게 최소한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대전제 아래 기획에 들어갔다. 공정사회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자칫 최면에 걸릴 수도 있는 주민들과 함께 우리가 서있는 현주소를 정확히 공감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접근은 청주시 인사에 대한 공정성 평가와 공정사회에 대한 주민의식조사라는 두 축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학연과 지연이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속설과 ‘국민 대다수가 우리사회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가설의 확인이었다. 청주시 인사에 대해 설문에 응한 전공노 청주지부 조합원 가운데 73%가 최근 5년 간 인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가운데 98.6%는 학연 또는 지연이 작용한다고 응답했다. 속설로 떠돌았던 특정지역·특정고교의 위력에 대해서도 적어도 심정 상에 존재하는 실체가 확인됐다.

주민의식조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공정사회를 국정기조로 내세웠지만 우리사회가 공정하다가 말한 사람은 13.5%에 불과했고 58.9%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충북을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도 13.6%가 긍정적으로 바라봤고 38.1%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부자가 되기 어렵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48.6%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아니라고 말한 사람은 19.5%에 그쳤다. 결정적으로 충북 내에서도 균형있게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답변이 58.3%에 달했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조사결과에 대해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공정사회는 단순히 형식이나 절차의 차원을 넘어서 근본적인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는데 있다는 게 드러났다. 단순히 구호로 외치는 공정사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공정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선우현 청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로 전면에 내건 ‘공정사회’라는 슬로건은 유명환 전 장관이 딸 특혜 논란으로 전격 사임한 이후 빠르게 사회 전반에 번져 나가면서 올 한해 한국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소위 ‘보온병 포탄’ 패러디도 결정적인 한 몫을 하였다. 상당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냉소적으로 희화화한 이러한 패러디는, 한국사회 곳곳이 얼마나 반칙과 변칙, 불공정으로 찌들어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의 풍자적 사례였던 셈이다. 여기에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들의『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사실 또한 공정사회에 대한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희구와 열망을 담고 있는 징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공정한 한국적 현실을 넘어 새로이 추구하고 구현해야 할 공정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오늘날 공정성에 관한 한 가장 설득력 있는 철학적 논변의 하나로 간주되는 롤즈의 ‘정의론’에 의하면, 사회정의란 무엇보다 그 수량이 제한되어 있는 재화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노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를 차지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아울러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해 그러한 기회가 단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사실상 주어지지 않은 것에 다름 아닌 사회는 결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국가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에게 자아실현의 실질적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그런 경우에만 공정사회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실질적 기회 평등’이라는 원칙은 자의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정하고 정당한 분배의 원칙을 마련하기 위한 일련의 합리적이며 합당한, 공정한 절차의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것이다. 그러한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결정이나 정책, 제도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 부정의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면에서 사회정의란 ‘공정한 절차’를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사회성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거쳐 도달한 상호이해와 합의에 의거하여 특정 정책이나 제도 등이 수립·추진되는 사회라야만 공정사회라고 칭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민주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무시한 채 정부나 국가기관 등이 힘의 논리에 입각하여 특정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관련 이해관계 당사자인 일반국민들의 입장과 이익을 무시한 전형적인 ‘불공정 게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부정의한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정사회의 자격조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와 존엄성이 동등하게 존중된다 해도 여전히 그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기 마련인 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절차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이주민이나 문화적 소수자와 같은 ‘이질적인 타자들’의 차이성과 정체성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라야 공정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가 한층 더 빠르게 변화·진화해 나감에 따라 공정사회의 조건 역시 그 외연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에 비추어, 한국사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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