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햄프셔주의 런던데리 타운이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라면 로체스터시(Rochester)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속에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도시재생에 나선 지역이다.

▲ 한 세기 흥망성쇠를 이뤘던 코닥본사가 로체스터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로체스터시는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구 20만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한국에도 꽤 알려진 도시 중 한 곳이다. 뉴욕주 북부의 주요 도시 중 한 곳이었던 로체스터시는 5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호(Lake of Ontario)에 접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특히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80년대 필름. 인화지 회사인 코닥과 복사기 전문회사로 잘 알려진 제록스,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델파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다국적 기업 본사와 공장 등이 모여 있던 도시가 바로 로체스터시다.

기업유출 - 인구감소 - 재정위기 악순환

온타리오호와 연결된 ‘이리 운하’(Erie Canal)는 교통의 요지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과거에는 뉴욕까지 물류운송의 중심이었을 정도로 로체스터시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그런 로체스터시는 90년 대 들어서면서부터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함께 찾아온 빈곤문제와 실업문제 때문이었다. 실업은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고 도시의 쇠락은 더욱 가속화 됐다.

▲ 1800년대 로체스터에서 뉴욕까지 연결된 ‘이리 운하’(Erie Canal)는 지금은 고속도로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대도시에서 갑자기 중소 도시로 전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다국적 기업의 코닥의 몰락과 타 지역(국가)으로의 공장 이전에서 찾을 수 있다. 섹터10에서 만난 이민기(64)씨에 따르면 주민 3명 중 1명이 코닥에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세금 등의 문제로 공장을 멕시코,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면서 도시가 쇠락했다는 것.

NBN은 주민참여 통한 마을 만들기
인구 감소와 실업률·빈곤층 증가로 이어진 도시의 쇠락은 세금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세금 감소로 인한 재정문제는 도시 기반시설과 주거환경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NBN(Neighbor Building Neighborhood)이웃공동체를 만드는 이웃들 또는 우리 마을을 가꾸는 이웃들)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같은 도시문제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NBN은 주민 손으로 마을을 재생하자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에서 벌이고 있는 도시재생사업 또는 마을만들기사업과 유사하다.
로체스터시는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시 차원의 종합적인 지역개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종합개발계획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4년 시장에 당선된 존슨은 문제의 핵심을 거버넌스에서 찾았다.

▲ 하워드(Howard) 재정담당 공무원

존슨 시장 재임시절 NBN을 담당했던 로체스터시 하워드(Howard) 재정담당은 “시가 직접 개발계획을 세우기보다 시민 의견을 풀뿌리 민주주의 형태로 모으는 과정을 거칠 필요를 인식했다”고 말했다. 시 정부만으로는 당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존슨 시장의 의지의 반영이다.

시는 36개 마을(Neighborhood)을 10개 섹터로 나누었다. 각각의 마을에는 각기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마을 모임, 연합체, 주민자치위원회와 같은 단체가 있는데 시는 이들 조직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무엇보다 각 섹터 주민들과 자치조직을 설득하고 섹터 스스로 계획을 만들도록 장려하는 역할에 중심을 두었다. 시는 일정 정도의 재정과 전문가 그룹과 같은 자원을 제공했다.
과거에 시가 각각의 마을 개발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면 NBN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직접 마을개발 계획을 세우고 시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필요한 재정이나 훈련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NBN은 ‘시민이 직접 계획’을 하고 실행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인 것이다. NBN프로그램이 우리나라 각 자자체에서 시행하는 주민참여 방식과 다른 점이다. 물론 일부 자치단체는 주민이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계획수립부터 실행과정인 행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주민참여로 민 · 관협력 실현
로체스터시가 NBN프로그램을 추진했던 또 다른 이유는 “기업 유출과 인구 감소에 따른 실업률과 빈곤층 증가로 인한 재정 악화를 줄여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게 하워드씨의 설명. 시가 하던 사업을 줄이지 않고서는 재정악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NBN프로그램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섹터마다 다양한 주민단체가 서로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섹터1 샬럿(Charlotte)의 경우 샬럿커뮤니티위원회(CCA)를 중심으로 온타리오호 해양공원위원회(OBPPC), 샬럿조경위원회(CBC), 샬러 공동체개발기구(CCDC) 등 10개 위원회와 기구가 섹터1을 지탱하고 있는 주민자치조직이다. 이들 기구는 샬럿 섹터위원회 회원조직으로 각자 다른 영역에서 계획을 수립해 실행하지만 필요할 땐 협력하는 유기적인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마을 조경조성부터 학교 설립과 도서관 건립, 또 호텔 유치부터 펀드조성을 통한 도시재개발에 이르기까지 각 섹터 위원회의 역할은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공동체 조직인 섹터위원회가 ‘시민이 주도하는 자치정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 온타리오 해양공원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시민 스스로 도시문제를 정치와 행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행정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로체스터시. 로체스터시의 섹터위원회와 NBN은 민주적 거버넌스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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