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데리 타운의회는 매해 3월 전 주민이 참석하는 타운미팅과 함께 한 달에 두 번 타운의회 회의를 열어 지역의 주요한 사안에 대해 주민들과 토론하고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저녁 8시, 미국 뉴햄프셔주 한 작은 마을의 타운홀 내 회의장에는 이십 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 날은 런던데리 타운의회의 8월 두 번째 정기회의가 열린 날. 참석자들은 타운 내 새로 생긴 도로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에 대한 의견부터 런던데리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 주민들로 구성된 밴드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음향시설이 갖춰진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 이 날 상정된 의제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공유하며 밤이 늦도록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해는 지고 공무원도 모두 퇴근해 집으로 돌아갔음에도 늦은 시각까지 모여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들도 주민,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이들도 주민, 그것을 방청하는 있는 이들도 주민인 이 회의가 펼쳐지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 직접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인 '타운미팅'을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인구 2만5천여 명의 런던데리(Lodonderry)타운이다.

◆ 직접민주주의의 총체, 타운미팅

런던데리 타운미팅(일종의 주민총회)의 역사는 200년이 넘는다. 현재의 타운미팅은 1년에 한 번 매해 3월에 열리는 연례총회와 특별총회로 구분되는데 특별총회의 경우 타운 내 중요한 안건이 있을 시에만 소집된다.

▲ 미국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타운의회 회의 현장은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받아 들여 진다.

타운미팅 연례총회의 가장 중요한 안건 중 하나는 바로 타운의 일 년 예산을 결정하는 것. 총회에 모인 주민들은 그 해의 예산안을 심의ㆍ비준하는 것은 물론, 행정 책임자인 타운행정관을 임명하는 권한을 지닌 타운의회 의원을 선출함으로써 행정에 대한 직접 통제권도 얻게 된다.

또, 타운 내 아주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거나 각종 위원회의 위원을 선출하고 그 활동을 보고받는 일 등도 타운미팅에서 하고 있다. 타운미팅을 통해 구성되는 타운의회는 이러한 타운미팅의 의제를 설정하고 일상적인 주민참여의 장으로써 한 달에 두 번 회의를 열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제들이 토론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어찌 보면 런던데리 주민도 타운의원을 뽑는 것이고 우리도 선거를 통해 군수나 군의원을 뽑는 것인 만큼 두 제도가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들에게 지역의 문제를 결정한 권한을 대부분 위임하지만 런던데리의 경우 지역의 최고 의결기관은 주민총회인 '타운미팅'이다. 타운의회는 아무리 적은 수의 주민이라도 타운에 대한 어떤 요구가 있다면 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그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면 추진 예산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한 주민이 자기 집 앞에 새로 난 도로의 이름이 지역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타운의회로 가져온다. 그렇게 모아진 사안에 대해 타운의회 의원들과 충분히 토론을 거치고 그 결과에 따라 도로 이름의 변경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새로 난 도로의 이름을 기안한 뒤(물론 '주민의견수렴'이라는 형식적인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군수에게 결재를 요청하고 의회의 큰 반발이 없는 한 군수가 결재하면 그대로 그것이 도로 이름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우리로써는 놀라운 의사결정방식이 아닐 수 없다.

런던데리에선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란 있을 수 없어 보였다. 런던데리에서 행정이란 말 그대로 주민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며 결국 타운 살림의 하나하나가 전체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타운미팅과 타운의회, 역시 주민들이 직접 위원을 선출하고 구성하는 각 분야별 위원회를 통해 결정되고 있었다.

타운의회 회의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이 런던데리의 타운미팅을 'Great Democracy'(위대한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표현의 자유, 이 정도는 되야죠!
주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공동체언론 LAC TV

우리고장에 만약 희망하는 주민 누구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면 어떨까?

농민은 자신만이 가진 농사 비법을 소개하는 방송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는 맛있는 간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요리쇼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운동에 관한 프로그램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지역의 정치인들을 초청해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도 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고?

▲ 런던데리의 공동체방송국인 LAC TV 스튜디오, 방송 녹화에 앞서 토론자와 진행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런던데리의 공동체언론인 LAC TV(Londonderry Access Community TV)는 이 꿈같은 이야기를 이미 25년 넘게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LAC TV는 타운 예산으로 방송국 운영비의 전액을 지원하는 공동체언론으로, 방송을 하고 싶은 주민은 누구나 자신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지역 내에 송출되는 두 개의 채널을 통해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방송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도 모든 주민이 촬영, 편집 등의 방송기술을 가질 수는 없는 법. 따라서 타운에서는 주민들에게 방송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세 명의 상근 스텝과 자원봉사자들이 근무하며 주민의 방송제작을 돕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런던데리에선 방송국 운영비용을 주민이 내는 세금에서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 런던데리는 타운 내에서 케이블방송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업자들에게 반드시 수익의 5%를 기부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수익금 전액을 공동체언론인 LAC TV를 운영하는데 쓰고 있다.

LAC TV가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은 소위 말하는 '사전 검열'이 전혀 없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LAC TV를 통해 상업적이거나 청소년에게 유해한 프로그램이 전혀 방송되지 않는 것은 주민들 스스로가 25년 넘게 공동체언론을 운영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되 공공에 이로운 프로그램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터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퇴직 전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아마추어 비디오ㆍ작가로 활동하다 퇴직 후에는 방송국에서 스튜디오 프로듀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알 시펙(Al Sypek)씨는 "미국의 헌법 제1조가 바로 '프리 오브 스피치'(Free of Speech)로 말하는 것의 자유, 연설의 자유 이런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며 "LAC TV는 지역에서 바로 이런 말하는 것의 자유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공간이고 주민의 한 사람으로써 내가 원하는 내용을 직접 방송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LAC TV의 가치를 소개했다. (LAC TV 누리집 (www.lactv.com)에 들어가면 LAC TV를 통해 방송된 주민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다.)

▲ 퇴직 후 LAC TV의 프로듀서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알 시펙씨가 방송 녹화를 돕고 있는 모습

<인터뷰>런던데리 타운의회 폴 디마르코 의장
▲ 런던데리 타운의회 폴 디마르코 의장.

"주민이 원치 않으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참여민주주의"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지역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다. 주민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 바로 참여민주주의의 가장 큰 매력이다."

타운의회 회의가 열린 다음날인 8월24일 저녁, 타운의회 회의장에서 만난 폴 디마르코(Paul Dimarco) 의장은 '참여하지 않는다면 불평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짧은 말로 타운미팅에 참가하는 주민들이 가진 생각의 일면을 느끼게 해 주었다.

디마르코 의장의 이 말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참여해서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는 런던데리 타운미팅 제도에 대한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타운미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불평하는 사람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타운에 관련된 어떤 사안이라도 타운미팅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자신감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데리 전체 유권자 수에 비해 타운미팅 직접 참가자 수가 점차 줄고 있다는 점은 타운의회 차원에서도 깊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 것으로 느껴졌다. 따라서 2011년 3월 열릴 연례총회에서는 주민의 타운미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지금의 시스템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 것인가도 논의하게 될 것이란 게 디마르코 의장의 설명이다.

IT업계에 종사하며 지난 15년 간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타운의 일에 적극 동참해온 디마르코 의장은 올해로 3년째 타운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1년 임기의 의장을 맡아 타운의회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디마르코 의장과의 1문1답이다.

Q. 런던데리 타운의회의 권한과 의원의 역할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가장 대표적으로 타운의회 의원은 런던데리를 위해 예산이 어떻게 사용 되어야 할지를 주민들이 판단해야 할 때 그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한다.

바로 타운미팅에서 주민들이 타운의 예산을 결정할 때 그것을 돕는 것이다. 현재 런던데리에는 5명의 타운의원이 있다. 개별 의원이 어떤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고 의회가 구성되었을 때 힘을 갖는 것이다.

Q. 타운의회를 통해 주민들이 타운의 행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 두 가지 면에서 가치가 있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의미인데, 이곳은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4~5백 년 전부터 참여민주주의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오랜 전통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타운미팅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지역화의 문제인데, 미국처럼 큰 나라는 연방 정부나 주 정부가 멀리 있고 그처럼 큰 정부가 주민의 욕구에 맞게 기능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되기는 매우 어렵다.

지역에 뭐가 필요하고 지역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고 주민이 원치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참여민주주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난밤 회의 때 타운의원들은 도로에 새로 붙여질 이름을 승인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한 시민이 와서 '반대한다'고 말해 지금 연기된 상태이고 시민들이 더 좋아할 이름을 찾고 있다. 똑같은 일이 연방이나 주에서 일어났다면 엄청난 관료주의로 1년이 지나도 아마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런던데리가 하고 있는 타운의회와 타운미팅 방식이 로컬거버넌스의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Q. 런던데리 역시 타운미팅에 주민참여를 늘리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런던데리 타임즈나 데일리 뉴스와 같은 지역신문과 웹사이트, 블로그 등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런던데리에 유권자가 1만7000명이다. 그런데 지난 타운미팅 때 이보다 훨씬 적은 300명 남짓이 참여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참여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참여하지 않는다면 불평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가, 왜 경찰이 늦게 오는가' 등을 불평하지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만큼 로컬거버넌스는 그만큼의 의미를 띄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운미팅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미국 런던데리 공동취재단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