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타운이 10년째 표류하고 있다. 밀레니엄타운은 말 그대로 21세기의 개막,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청주시 주중동 옛 종축장 부지에 무언가를 조성하려던 사업이다. 민선 5기가 시작되면서 ‘밀레니엄타운을 어떻게 할 거냐’고 언론도 지역사회 여론도 난리법석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조바심을 내는 것 같다.

이 지사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공약인 프로축구단 설립과 관련해 “국제규격의 축구장을 밀레니엄타운 부지에 건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 지사는 또 “도민 전체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대규모 식물원이나 인쇄 박물관, 고건축박물관 설립도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기 1000년에도 세상은 밀레니엄을 기념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서기를 연호로 쓰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밀레니엄 따윈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 목종 집권 3년차였다.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지만 최근 행정고시 축소와 특채제도 도입,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논란 등으로 현대판 음서제(蔭敍制)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같은 특채가 제도화된 것이 서기 1000년 전후 목종 때였다.

시간의 흐름을 토막 내는 습관

사실 역사의 흐름에 마디가 있을 리 없겠지만 분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토막 내 기념할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세태는 갈수록 더하다. 출생 후 60년이 되는 해를 환갑이라 하여 기리는 것도 그 예다. 돌, 백일도 모자라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까지 기린다.

환갑잔치를 대대적으로 치러온 것은 태어나 60년을 살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엔 환갑이 시들해졌고 칠순도 잔치를 치르기보다는 여행 등 다른 방법으로 기념하는 추세다. 돌 역시 태어나 1년도 못살고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장수를 축원하는 행사였다. 그렇다면 만난 지 100일을 기념하는 행사는 100일도 못돼 깨지는 커플들이 많기 때문일까?

인류가 2000년을 맞이하면서 밀레니엄에 광분했던 것도 1500년대에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의사이자 천문학자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멸망 예언에 가슴을 졸여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적중률을 떠나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도 세상은 늘 말세에 한 다리를 걸치고 돌아가니 말이다. 

백년도 못살면서 웬 밀레니엄?

각설하고, 리더의 상상력에 딴죽을 걸고 싶다. 밀레니엄 당시의 민선 3기 이원종 지사는 대중골프장과 특급호텔을 짓는다고 발표했다가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민선 4기 정우택 지사는 일본의 부유층을 겨냥해 국제웨딩빌리지를 짓는다고 했으나 MOU를 체결했던 민간사업자가 구상단계에서 나가떨어졌다. 청원군 오창 출신의 신응수 대목장을 청주로 데려와 고건축박물관을 짓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당시 정우택 지사의 코드와 맞지 않아서 무시됐다.

축구장을 짓자는 이시종 지사의 상상력도 귀가 솔깃할 정도는 아니다. 국제규격의 축구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기존의 시설을 개보수해 국제규격을 맞추는 게 더 현실적이다. 청주·청원 통합이 논의되는 마당에 놀고있는 청원공설운동장을 재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땅한 게 없다면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게 났다. 진정한 새천년사업은 천년 후 아니 다만 백년 후의 세대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냥 두기가 찜찜하다면 숲을 만들면 어떨까? 대규모 식물원이란 발상이 그래도 신선한데 이 역시 구조물을 최소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후손으로부터 빌려온 지구에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