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南村)>의 희망과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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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南村)>의 희망과 비극
  • 충북인뉴스
  • 승인 2010.09.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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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전 CBS 사장
가곡 <남촌>의 원래 제목은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이다. 왜 제목을 간단하게 <남촌>으로 바꿨는지는 모르지만, 짐작컨대 이 시로 만들어진 대중가요가 이미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제목을 피하기 위해서거나 제목을 쉽게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시를 쓴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 1901-1950?) 시인은 6·25 때 납북되어 당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두 가지 노래는 그러한 때에 만들어졌다. 이 시는 1927년 1월 출간된 <조선문단 18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3절까지 지어졌는데, 노래로는 가요나 가곡이나 대개 2절까지만 불리우고 있다.


남 촌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작시, 김규환 작곡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이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南風) 불 때 나는 좋대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들엔 호랑나비 떼
버들가지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대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주: 1,2절은 가곡집의 가사, 3절은 <김동환 시선 ‘국경의 밤’>(1991)에 실린 것]

▲ 산너머 남촌에는 원본사진.
대중가요 <산 너머 남촌에는>은 이 시가 나온 후 38년이 지난 1965년 대중음악 작곡가 김동현씨가 곡을 붙여 박재란씨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렀다. 이 노래는 당시 크게 히트했다. 아직도 50대 이상 나이드신 분들은 대부분 이 노래의 곡조를 기억하고 있다.

가곡 ‘남촌’은 뒤늦게 작곡되었다. 박재란씨 노래가 나온지 14년 후의 일이다. 1979년 같은 시에 KBS합창단을 지휘하던 작곡가 김규환씨가 혼성 4부로 작곡했다. 그 후 소프라노의 멜로디를 솔로화 함으로써 가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솔로와 합창곡 등으로 선호하는 가곡중 하나이다. 가요는 어쩌다 방송에서 ‘흘러간 옛노래’ 시간에 한번씩 불려질 뿐이다.

▲ 김동환 시인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은 하나의 시가 대중가요와 가곡으로 각각 작곡되어 비교적 널리 불리웠고,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잘 유지하고 있는 많지 않은 케이스 중 하나이다.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박영사, 2001년 검정)에도 가곡과 가요의 악보가 함께 실려있다. 그만큼 두 곡이 다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시의 내용이 우리의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원본과 비교해보면 가요나 가곡이나 일부 가사의 맞춤법, 표현 등을 현대시체로 바꾸었다. 원본 1절의 ‘남으로 오데’를 ‘남으로 오네’로, ‘남풍 불 제’를 ‘남풍 불 때’로 바꿨고, 특히 가곡에서는 2절의 ‘너른 벌엔’을 ‘넓은 들엔’으로 ‘버들밭’을 ‘버들가지’로 바꾸기도 하는 등 몇군데 손을 댔으나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3절의 경우는 원본시와 다소 차이가 큰데, 원본시의 3절은 다음과 같다. [<산너머 남촌에는> 원본 사진 1,2 참조. 김동환 서정시집 <해당화> (대동아사 출간, 1942)에 수록된 것.]

▲ 김동환 서정시집 <해당화>(1942) 안표지.
3.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섯고
그나무 아레에는 각씨섯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자최안뵈나,
끈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요히 들니데.
(주: 시 원본 3절 / 원본에 인쇄된 대로 옮긴 것임)


원시에서는 3절 2행에 ‘각씨 섰다기’로 되어 있는데, 그후의 시집에는 ‘누가 섰다기’로 바뀌었다. 원본처럼 ‘각씨 섰다기’로 되어야 그 다음의 ‘그리운 생각에 ---’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누가 섰다기’로 인물을 모호하게 바꿔버리니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운 생각에---’가 어색하다. ‘각씨’니까 ‘그리운 생각’이 드는 것 아니겠는가? ‘자최안뵈나’를 ‘아니 보이네’로 바꾼 것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가보지 못한 따뜻한 남쪽마을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하여 새 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남으로부터 봄바람이 불어오면, 진달래 향기, 보리 내음새, 금잔디 너른 벌의 호랑나비, 종달새 노래 등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담겨있다.

3절은, 남쪽 마을에는 배나무가 있고, 그 아래 각시가 서 있다기에 보고픈 마음에 언덕에 올랐으나, 구름에 가려서 볼 수 없어 아쉽고 더욱 그립다.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각시가 부르는 듯한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는 내용으로, 일제 강점기의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나타낸 시라는 해석이 보편적이다.

파인 김동환은 20대 젊은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국경의 밤>을 발표했고, 북방지역의 정서를 잘 나타낸 <북청 물장수>, <눈이 내리느니> 등을 썼으며, 이 곡 <산 너머 남촌에는>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는 <아무도 모르라고>, <봄이 오면>, <강이 풀리면> 등 수많은 서정시를 지은,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시인이었다. [사진: 시집 <해당화> 안표지]

그러나 그의 말년은 불행했다. 그는 태평양 전쟁(1941~1945)이 일어난 후부터 시, 논문, 강연 등을 통해서 조선 청년들을 전쟁에 나가도록 독려하고 황국신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친일 행각을 하였다.

이러한 친일 행각으로 광복 후 그는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하여 공민권을 제한 당했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 뒤의 행적에 대하여는 제대로 알려진 바 없으나, 시인의 마지막이 비극적이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의 후기 행적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예술은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김동환이 20대 때 노래했던 <산 너머 남촌에는>은 80년이 넘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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