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 아는 사람은 있을 자리와 물러날 자리 구분
새로운 정책 성공시키기 위해 숨은 인재 발굴 시급

▲ 허원 교수
특별기고 / 허원 원흥이 생명평화회의 상임의장·서원대교수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 내 보수적 성향의 기득권층과 일부 언론은 도지사를 비롯한 단체장과 시·도의원 선출에서 이렇게 큰 물갈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층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도민들은 세종시나 4대강 문제 등 중앙정치와 얽힌 국면에서 시·도지사가 보여준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에 대한 불신과 시·도정의 새로운 변화를 희망하는 표심을 놀랄만큼 강하게 드러냈다.

이시종 지사가 취임사에서 155만 충북도민은 지금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서민중심정책을 통해 서민이 행복한 서민중심도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은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에 대한 응답이었다.

민선4기 정우택지사체제가 경제특별도·문화선진도·농업명품도를 내걸고 투자유치와 문화재단 인재양성재단 환경기금 설치 등 거창한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성과도 없지 않았지만 민심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도민들은 아무리 거창하고 명분이 그럴듯하더라도 큰 야망을 품은 정지사 개인의 철학이나 뜻을 펼치기보다 도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일을 시행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민선4기 도정이나 시정이 6월 선거에서 민심을 얻지 못한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지사와 시장에게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민들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키를 잡고 있을 때 제대로 직언한 공무원도 자문위원도 언론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불법은 포용의 대상 아니다

민선5기가 도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서민경제 서민복지 실현과 영농비 및 학교 무상 급식비 지원 등 새로운 정책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도지사 한사람의 견마지로(犬馬之勞)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선5기 청주시가 내건 전국최고의 명품도시 녹색수도건설을 위해서도 청주시장 한 사람의 열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새 단체장들이 임기 전반에 걸쳐 시행키 위해 제시한 중점추진과제의 성공적 실현여부는 실질적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조직과 각종 자문위원들 그리고 감시와 비판, 견제 기능을 담당하는 주민 시민단체 언론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방향이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 속도를 내면 낼수록 복구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능하면 조기에 오류를 바로잡도록 직언할 수 있는 식견과 용기를 가진 관리의 중용은 매우 중요하다. 일을 순조롭고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관리의 역할은 그 다음이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단체장을 도와준 관리가 있다면 그것은 충성심보다 자신의 출세와 안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니 이는 반드시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행태를 덮는 것은 포용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다른 관리들에게까지 그러한 충성심을 강요하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도 있다.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만큼 공무원조직이나 산하기관, 단체 등 선거중립을 엄격히 지켜야하는 집단의 일원이 규정을 어기고 불법선거운동을 한 경우 이를 법대로 처리해야 할 책임 역시 지극히 당연한 자치단체장의 의무다.

선거에 깊이 개입한 이들이 버티고 건재할수록 이들보다 덜 개입한 이들의 죄의식은 희미해질 것이고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정해진 법규에 따라 행정업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사회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논란이 있는 이들이 스스로 옮길 자리를 선택하거나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도록 기다려 주는 것은 도대체 어느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인간사회는 생활관습과 제도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 가운데서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인간내면의 영원한 활화산 욕심일 것이다. 인간사회의 갈등과 싸움은 대부분이 욕심에서 비롯된다. 동물 가운데서 싸움을 가장 좋아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더러운 동물이라고 꼬집은 카알라일은 결국 인간이 가장 탐욕적인 존재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사회의 갈등과 싸움을 억제하여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위해서는 욕심을 억누르고 추스르는 체면과 염치가 의미있는 가치로 평가될 수 있다.

보수주의자의 본령은 염치

보수가 한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전통적 관습이나 제도 가치를 지키려는 입장이라 한다면 보수주의자란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진지한 성찰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제 한 몸보다 전체를 생각하며 염치와 체면을 지키는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불법을 하면서까지 우두머리를 위해 충성하거나 불법시비에 휘말린 와중에도 염치와 체면은 내팽개친 채 변명에 골몰하거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고치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過則勿憚改) 염치를 아는 자는 자신이 있을 자리와 물러날 자리를 구분할 줄 알건만 그렇게 많은 단체장들이 바뀌어도 양반고을 충북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자책하는 분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민선5기 도지사를 비롯한 자치단체장들이 내건 새 시대의 화두를 담은 새로운 정책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와 추진력을 가진 숨은 인재들의 발굴이 시급하건만 새 술은 언제쯤 새 부대에 부어질 것인지. 진정으로 백성의 평안을 생각한다면 단체장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세력이 방해하더라도 굽히지 않고 담대하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

이러한 용기를 일컬어 대용(大勇)이라한다. 아울러 지도자로서의 지조가 없이는 결코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의욕적인 정책들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조지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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