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환 시인

새삼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15년이라, 흐르는 물 같다더니 참 멀미나는 세월입니다. 열다섯 살이면 세상을 안다고 폼 잡고 우쭐댈 만한 나이죠.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이민 내 모양이 아마 그랬겠지 싶습니다.

<충청리뷰> 창간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나는 경력이 가장 일천한 막내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글이라면 강호를 평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천지를 분간 못 하고 객기를 부리던 무렵, 그 설익은 것을 탓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준 선배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인생에 그렇게 특별한 한때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론직필’ 한길로 달려온 15년

▲ 소중한 글을 주신 류정환 시인은 15년 전 <충청리뷰>를 함께 시작한 창간사원으로, 3년 간 문화 담당 기자로 일하다 현재는 도서출판 고두미 대표를 맡고 있다.
생각해보면 반은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자못 방자한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다니던 신문사를 무작정 뛰쳐나와 다른 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만 더할 뿐이었지요. 어디 신문바닥만 그러했을까마는, 이를테면 뜻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뜻이 없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언론이 권력막후 노릇을 조이 하던 때였고 이른바 ‘1도 1사’의 틀이 깨지고 신문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와중이었는데, 제법 행세를 하는 기업이라면 바람막이로 언론사 하나쯤 끼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 유혹과 조건이 배가 맞으면 신문사가 하나 탄생하게 되는 식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반은 장난이었다고는 하나 돈 없는 신문 <충청리뷰>의 탄생은 절박하고도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돈이 대수냐, 까짓것 우리끼리 만들어 보자는 데 만장일치로 뜻을 모으고는 모두들 환호성을 올렸지요. 기나긴 우여곡절의 시작이었지요.

밑천은 보잘것없었지만 회사가 원하는 기사가 아닌 내가 원하는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만은 차고 넘쳤습니다. 성역도 없었고 금기도 없었으니 요즘 유행하는 카피 ‘생각대로’란 말은 그때 이미 제철이었던 셈입니다. 저녁으로 자장면 곱빼기를 배달시켜 배를 채우고 자판을 두드리며 밤을 새우던, 그 더부살이 사무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가난했지요. 말해봐야 믿기지도 않을 푼돈을 월급이라고 나누면서도 참 신나고 남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뭐랄까, 하루하루가 축제 같았다면 혼자만의 허풍일까요? 아무튼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정론직필‘ 실현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습니다. 그 15년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거니와 그 풍진 세월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참 대견한 일입니다. 그 동안 거쳐 간 사람도 많았고, 월간은 주간이 되었으며 사무실을 옮겨 다닌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어려운 갈림길에 맞닥뜨릴 때마다 <충청리뷰>를 지켜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결정이란 언제나 고독하고도 가혹한 행위지요. 자본의 유혹을 경계하면서 재정을 충당하는 것도 험난한 일이고, 회사 규모를 키우고 싶지만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많이 먹어야 하고 움직임에 빈틈이 생기게 되니 그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닌 터에 이만큼 의연하게 회사 규모를 가꾸고 언론사로서 체계도 제법 갖추었으니 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나간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저 인지상정일 따름이고, <충청리뷰>의 주인은 항상 ‘그때 거기 있는’ 사람입니다. 창간에 참여한 일원 중에 현재 남은 사람은 하나뿐이거니와 그마저 없다 하더라도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은 언제까지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발행인이었던 도종환 시인이 10주년 즈음에 “결 고운 글은 마음먹은 만큼 다하지 못했지만 올곧은 말은 많이 한 것 같다”고 술회한 것처럼 ‘결 고운 글’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날마다 시간을 다투며 쫓기는 형편에 영원한 숙제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알고도 못 하는 것과 아예 잊어버리는 것은 천양지차로 다를 것이므로 다시 각인시켜 주고 싶은 주문(呪文)입니다. ‘올곧은 말’이 내용을 지키려는 ‘의지’를 뜻한다면 ‘결 고운 글’은 형식을 다스리는 ‘절제’의 다른 말이기도 하기에 그렇습니다.

창의성·생동감을 앗아가는 병

나는 요즘 화요일마다 신문을 만들러 갑니다. 이런저런 구차한 사정으로 떨어져 나가 딴 짓을 하고 사는 주제에 부족한 편집라인을 메우러 다닌 지 여러 달 되었습니다. 낡고 무뎌진 솜씨나마 <충청리뷰>에 도움이 되는 게 기쁘기도 하고, 적잖은 나이에(?) 집중도 높은 노동을 감당하기가 벅찬 것도 사실입니다.

1차 독자이기도 한 편집자로 일을 하면서, 이따금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기사, 단순히 정해진 지면을 채울 목적으로 넘어오는 기사를 받아들 때는 당황스럽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 숙련되면 관성(慣性)이 생기게 되는데, 그게 참 무서운 병입니다.

생물이 외부의 자극과 무관하게 움직이거나 그냥 있는 것을 보면 넋이 나갔다고 말을 하지요. 관성은 창의성을 갉아먹고 생동감을 앗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에도 숙련공의 노련함보다 초보자의 떨림이 살아있는 신문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딴에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서 그런지 운명에 대한 애착이 있는데요,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구태여 쓰느라고 애쓸 게 뭐 있나 하는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사보다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기사, <충청리뷰>에서만 볼 수 있는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작할 때보다야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마당에 객쩍은 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아 민망합니다. 언론사 문패를 달고 정론직필을 부르짖는 곳은 허다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곳은 드문 세태 속에서 ‘충청리뷰’는 여전히 나를 흥분시키는 고유명사입니다. 다시 15년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이 <충청리뷰>가 내 가슴을, 도민들의 가슴을 뛰게 하리라 기대합니다.

언론사 문패를 달고 정론직필을 부르짖는 곳은 허다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곳은 드문 세태 속에서 ‘충청리뷰’는
여전히 나를 흥분시키는 고유명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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