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행사참석 자제, 축사 대폭 축소, 언론사 방문 폐지 필요

단체장의 참석을 요구하는 행사가 너무 많다. 간담회 공청회 준공식 기념식 체육대회 사회단체 관련행사···마치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오지 않으면 행사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비쳐질까봐 그러는지 주최측에서도 단체장의 참석에 목을 맨다. 단체장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의원, 사회단체 대표 등을 초청하는 게 관행처럼 돼있다. 이 때문에 내빈소개가 대단한 식순으로 자리잡았다.

자치단체장 비서실에서는 행사 참석을 요구하는 단체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잦다. 막무가내로 요구하기 때문에 진땀을 빼야 할 때가 많다는 게 비서들의 말이다. 그러나 만일 단체장들이 행사참석을 거절했다가는 ‘두고 보자’며 앙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 비서들도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는 것. 따라서 자치단체와 사회단체간에 행사참석에 관한 일종의 협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일부 자치단체장 중에는 재선을 위해 낯내기 행사장에만 다니는 경우가 있다. 선거 때는 더 심하다. 역대 청주시장 중에도 주민행사만 찾아다녀 밉상인 시장이 몇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위민행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체장들은 정책을 발굴해 주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행사장에 쫓아다니기 보다는 현안사업을 분석·종합할 수 있도록 주민들도 협조해야 한다.

감동 못 주는 축사 이제 그만
지난 2006년 민선4기가 시작된 뒤 엄태영 전 제천시장은 도내 단체장 처음으로 고위공직자의 대외행사 참여 매뉴얼을 만들어 산하기관에 시달했다. 구체적으로 △중앙 및 도단위 주관 행사 △시 주관 대규모 행사 △유관기관과 단체가 주관하는 대규모 행사 △기타 부득이한 행사에만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직능단체·사회단체·연합회의 등에는 연간 1회만 참석하고 사회단체장 이·취임식에는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부시장과 담당 국·과장들이 참석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구복 영동군수와 한용택 전 옥천군수도 외부행사 줄이기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좋았으나 도내 전체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매뉴얼과 이를 꼭 관철시키고자 하는 단체장의 의지가 필요했다는 평가다. 그리고 단체장은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만큼 이런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추진한다면 성공률도 높고 파급효과도 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민선시대 이후 단체장들이 불필요한 행사 참석으로 인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다. 단체장은 행사장에 앉아있기 보다 정책을 구상하고 민원인을 만나야 한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도 이런 문제와 관련해 논의해 보겠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자치단체장들이 행사장에서 축사를 너무 길게 하거나 구태의연한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 읽는 것도 지양해야 할 모습이다. 단체장들은 대부분 담당 공무원이 써 준 것을 읽는다. 그러다보니 미사여구와 칭찬 일색이고, 축사를 하는 사람마다 내용도 비슷하다. 도지사와 도의장, 시장과 시의장의 축사가 비슷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여기서 쓰는 단어자체도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용어여서 딱딱하기 그지없다. 이 때문에 축사를 듣고 있는 주민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저 의례적인 행사일 뿐이다.

강태재 대표는 “축사는 안하면 좋고, 하더라도 짧게 하거나 꼭 필요한 말만 했으면 좋겠다. 단체장들이 행사의 취지나 성격도 모른채 와서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읽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2004년 직지축제 때 축사를 모두 생략한 적 있다. 그랬더니 시민들이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축사를 없앴더니 시민들이 좋아하더라는 얘기는 굳이 축사가 필요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토론회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그리고 취임후 언론사 방문도 폐지해야 할 관행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주요기관장들은 취임 후 으레 언론사를 방문해 ‘눈 도장’을 찍는다. 대개 청주지역 신문·방송·통신사 등 20여개사를 도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 이들은 시간이 없어 길어야 10분 가량 앉아 있다 떠나곤 한다. 그러면 다음 날 신문 ‘내방객’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다. 어떤 단체장들은 이 명단에 이름이 들어갔는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는 후문이다.

‘힘있는 기관’에 얼굴 한 번 비추고자 하기 때문인지 단체장들의 언론사 순례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민선5기가 시작된 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단은 예외없이 언론사들을 한 바퀴 돌았다. 모 단체장은 “언론사 방문하는데 하루 종일, 더러는 그 다음 날까지 계속한다. 시간도 많이 뺏기고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기도 어렵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지만, 선뜻 그만둘 수가 없다. 나만 빠질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선출직 단체장들은 한 언론사를 선거 출마 후, 운동기간 중, 당선 뒤, 취임 뒤 등 대개 4번 이상 방문한다. 이 또한 언론사와 기관·단체장간에 협약을 맺어 폐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가하면 민선5기들어 꼭 실천해야 할 것도 있다. 기관·단체장과 고위직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토론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단체장과 고위 공무원들의 토론회 기피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TV와 각종 시민사회단체, 지자체, 연구소 등지에서 많은 토론회가 열리지만 공직자들은 으레 피한다. 하지만 민선5기의 핫이슈가 대화와 소통인 만큼 주요 책임자들은 토론회 석상에 나와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은 선거 후 토론장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 혹 참석하더라도 축사만 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토론자로 나오라는 얘기다. 이 또한 脫 권위의 모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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