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영동 물한계곡과 삼도봉

장마가 그친 뒤 찾은 물한계곡은 이름처럼 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계곡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물은 떼거리로 몰려가며 깔깔거리고, 나뭇가지들은 바람 따라 낄낄거리며 후두둑 햇빛을 털어낸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백두대간 삼도봉(1176m) 능선과 골짜기를 적신 물은 뭇 생명의 목젖을 적시며 콸콸 흘러내린다.

▲ 삼도봉 화합탑 뒤로 백두대간의 흘러가고, 첩첩 산그리메가 거침없이 펼쳐진다.
물한계곡 꼭대기는 삼도봉

버스가 상촌면 소재지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물한계곡이 시작된다. 길은 계곡을 굽이굽이 타고 돌고, 그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잠시 창밖으로 아득한 산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백두대간 삼도봉과 민주지산 능선이다. 물한계곡은 삼도봉에서 시작해 상촌면까지 무려 20㎞쯤 흐르는 계곡이다.

물한계곡의 모산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가 만나는 삼도봉이다. 우리나라에서 삼도봉은 이곳 말고도 지리산의 삼도봉과 대덕산 앞의 삼도봉(초점산)이 더 있지만, 서로 다른 세 개의 도가 만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삼도봉은 민주지산(1242m)이 거느린 이름 없는 봉우리 중의 하나였지만, 태종 14년(1414) 조선을 팔도로 나눌 때 충청, 전라, 경상 삼남의 분기점이 되면서 삼도봉이란 이름을 얻어 민주지산보다 유명해졌다.

▲ 석기봉 앞에서 본 물한계곡의 웅장한 모습. 골골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진 것이 물한계곡이다.
물한계곡 산길은 삼도봉과 연결하는 것이 좋다. 민주지산까지 종주하는 코스도 있지만, 여름 산행으로는 무리다. 산길은 물한계곡을 거슬러 삼마골재에 이르고, 능선을 타고 삼도봉을 거쳐 석기봉 직전 안부에서 내려서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약 11㎞, 5시간쯤 걸린다.

물한계곡 주차장을 지나 십 여분 오르면 황룡사 갈림길.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 사이로 조각 햇볕이 우수수 쏟아지는 상쾌한 길이다. 길 왼쪽으로 우당탕탕 계곡이 흐르는데, 안타깝게도 철조망을 쳐 놓았다. 계곡을 보호하려는 방법이지만, 좀 심하다. 낙엽송과 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숲길을 20분쯤 따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갈림길이 연달아 나온다. 모두 민주지산으로 빠지는 길이다. 물한계곡은 삼도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넓은 계곡을 따르면 된다. 철조망이 사라지면서 쭉쭉 뻗은 전나무 그득한 숲길이 이어진다.

▲ 물한계곡의 그윽한 숲길은 사색에 빠지게 한다.
세 번째 나타나는 길림길에서 오른쪽은 석기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하산할 때 내려오는 길이므로 주의 깊게 봐두자. 갈림길을 지나면 음주암폭포 이정표가 보인다. 그 길로 100m쯤 올라 산죽밭을 지나면 약 15m의 음주암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폭포 아래 넓은 소에서 얼굴을 씻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니 땀이 쏙 들어가고 으슬으슬 춥다.

삼도봉에서 펼쳐진 첩첩 산그리메

다시 길을 나서면 전나무, 들메나무, 쪽동백나무 등이 어우러진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나무 데크가 깔린 삼마골재에 올라붙는다. 초록빛 고원지대에서 깔린 나무 데크는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삼마골재에서 삼도봉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은 야생화가 잔치가 벌어졌다. 주근깨 더덕더덕 묻은 하늘나리와 짙은 향기 내뿜는 박새 꽃이 절정이다. 삼도봉이 가까워지며 보랏빛 일월비비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월비비추는 비비추와 달리 한 개의 꽃봉오리에서 여러 개의 꽃이 한꺼번에 나온다. 야생에서는 처음 만나 더욱 신기하다.

▲ 물한계곡의 최고 명소인 음주암폭포.
이윽고 하늘이 넓게 열리면서 삼도봉 정상이 나온다. 정상 넓은 공터에는 세 마리 거북과 용이 조각된 삼도 화합탑이 서 있다. 예전 신라와 백제, 고구려가 이 산을 둘러싸고 각축한 이래, 1000년 이상의 갈등을 품고 있는 봉우리가 화합의 상징이 된 것이다.

삼도봉에 서면 마치 이곳이 삼도의 중심처럼 느껴진다. 남동쪽 멀리 우뚝 솟은 우락부락한 봉우리가 합천 가야산이고, 남서쪽으로 황악산의 거쳐 대덕산과 덕유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능선이 거칠 것이 없다. 서쪽 가까이 뾰족한 석기봉과 민주지산 능선이 장쾌하게 흘러간다. 이 장면의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모든 산맥이 삼도봉을 향해 말달려 오는 듯한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삼도봉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석기봉으로 출발이다.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석기봉 직전 안부에 도착한다. 여기서 능선을 버리고 가파른 계곡으로 내려서면 울창한 나무들과 고사류들이 지천으로 깔린 원시 숲이 펼쳐진다. 급경사가 끝나면 계곡을 따라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오솔길이 이어진다. 산비탈을 타고 도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을 30분쯤 내려오면 올라오면서 보았던 세 번째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인적 뚝 끊긴 물한계곡은 우렁찬 물소리로 가득하다.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으로 나와 물한계곡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대중교통은 기차가 편하다. 서울역에서 영동 가는 열차가 20~30분 간격으로(05:55~22:55)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운행한다. 영동역에서는 물한계곡 가는 버스는 1일 5회 운행(06:20, 07:30, 12:10, 14:40, 17:50)한다. 물

한리에서 영동으로 나오는 버스 역시 1일 5회(07:30, 09:30, 14:20, 17:10, 19:10) 운행한다. 동일버스 043-743-7500. 영동역에서 물한계곡까지 택시요금은 3만 5천원선. 영동콜택시 043-743-3961. 물한계곡 주차장 옆의 다래나무식당(043-745-0967)은 청국장이 깔끔하게 잘하고, 영동역 옆의 영동올갱이식당(043-744-1077)은 올갱이전골(2인 이상, 1인 7000원)이 일품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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