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옥천 ‘향수 30리’길

옥천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청정고을이다. 금강의 맑은 물이 옥토를 이루고 산자수려한 자연환경과 유구한 문화전통을 간직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옥천을 대표하는 인물은 시인 정지용이고, 자연은 금강이다. 정지용과 금강이 만나 ‘향수 30리’길이 만들어졌다.

▲ 정지용 문학관의 밀랍 인형. 사진 촬영 단골 장소다.
실개천이 흐르는 구읍의 매력

우리나라 최초의 모더니스트 시인 정지용(1902~1950)은 한때 잊혀진 존재였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것이 빌미가 되어 좌파 시인으로 분류됐기 때문. 하지만 1988년 해금되어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1996년 그의 생가가 복원됐고, 2005년에는 정지용 문학관이 건립되면서 그의 발자취와 생애, 문학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소절 읊조릴 수 있는 ‘향수’는 노래로 만들어져 더욱 유명해졌다. 덕분에 정지용은 국민시인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됐다.

▲ 금강을 무대로 정지용의 시와 설치미술이 만나 ‘멋진 신세계’를 이룬 옛 장계관광지.
정지용의 생가가 있는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옥천역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이 옥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옥천역이 생기면서 역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다 보니 지금은 쇠락해 ‘옛 구자(舊)’를 써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은 비록 경제적으로 밀려나 있지만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생가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의 문학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생가 주변 상가들이 정지용의 시를 활용한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간판들로 단장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정지용 생가로 가는 길은 ‘향수’ 시구처럼 ‘실개천이 휘돌아’ 나간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생가가 나온다. 방이 세 칸에 부엌이 한 칸이 소박한 초가집이다. 정지용의 시에서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으로 나타난다.

▲ 정지용 생가 앞에는 ‘향수’의 시구처럼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흐른다.
생가를 나오면 바로 옆에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1층 건물인 문학관은 전시실과 문학교실로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지용 밀랍 인형이 반긴다. 전시실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정지용 육필 산문과 옛 빛바랜 옛 시집을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멋진 신세계’

▲ 정지용의 시 ‘창’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
문학관을 구경했으면 구읍 거리를 돌아다닐 차례. 구읍 우편취급소, 시가 있는 상회, 꿀꿀 정육점, 앵도 미용실…, 아기자기한 상가들의 간판에는 군데군데 정지용의 시가 적혀 있다. 거기서 시를 찾아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읍 볼거리는 상가들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건물과 고풍스러운 한옥들도 제법 남아 있다. 그중 춘추 민속관은 옥천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정태희 씨의 고택이다. 1760년에 세워진 고택에서 한옥 체험, 전통 혼례, 한옥 학교 등을 운영한다. “음악회 할 때 오셨으면 좋았을 텐테….”

정태희 씨는 내심 춘추 민속관의 한옥마실 음악회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했다. 수백 년 묵은 커다란 회화나무 아래는 커다란 평상이 놓여 있다. 여기 앉아 지긋이 바라보는 마당과 집 분위기가 근사하다.

▲ 정지용의 동시 ‘병’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
구읍 구경을 마치면 장계리의 ‘멋진 신세계’를 찾아갈 차례. ‘멋진 신세계’는 정지용의 시 세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정지용의 시를 모티브로 이완, 이정인, 홍지윤 등 작가 100여 명이 참여해 2년 동안 장계관광지를 새롭게 꾸몄다. 구읍에서 구37번 국도를 따라 30리쯤 이어진다.

‘멋진 신세계’ 입구에 서자 ‘모단광장’이 반긴다. ‘멋진 신세계’는 크게 시문학 광장인 ‘모단광장’과 놀이 광장인 ‘프란스광장’으로 나뉜다. 두 광장은 강변을 낀 고즈넉한 산책로로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20여 작품이 펼쳐져있다.

방문자가 처음 만나는 ‘모단광장’은 원고지 한 장을 건물과 광장으로 연출한 독특한 작품이다. 모던가게 유리벽에는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정지용의 ‘유리창’이 적혀 있다. 정지용이 아들을 잃고 썼던 슬픈 작품이다.

모단광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창’, ‘유리병’, ‘오월소식’ 등의 작품들을 만난다. 모두 정지용의 시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로 시와 미술의 만남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호젓한 강변길을 따라 나타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맛이 쏠쏠하게 좋다. 정지용의 시가 적힌 벤치에 앉자 강물도 시간도 느릿느릿 흘러간다.  / 진우석 프리랜서 여행작가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으로 나오면 바로 옥천 시내다. 서울역→옥천역은 무궁화호가 06:15~19:40(배차간격 1시간 20분), 2시간 10분 걸린다. 청주터미널→옥천은 06:40~20:00(배차간격 30분~1시간), 1시간 걸린다. 옥천역 앞의 시내버스터미널에서 구읍행 버스는 수시로 다닌다. ‘멋진 신세계’가 있는 장계리는 안남이나 안내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옥천 구읍은 미식가들에게 천국이다.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아리랑(043-731-4430)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한정식을 내오고, 마당넓은집(043-733-6350)은 전주식 전통 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50년 전통의 구읍할매묵집(043-732-1583)의 묵밥과 구읍식당(043-733-4848)의 생선국수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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