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정치·문화부 기자

지난 주말 수동 수암골을 취재차, 관람 차 방문했다. 부모님을 대동하고, 3살 난 조카와 9개월 된 딸까지 업고 언덕길을 오르니 고행 아닌 고행이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촬영으로 아예 입구부터 차량 진입을 금지해 이날 운동 한번 제대로 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줄 알고 온 관람객들은 정작 연예인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멀리서부터 제지를 당하는 게 짜증스럽다는 말투였다. 드라마 촬영 상 잡음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시민의 협조가 불가피해보였다. “이곳에 빵 먹으러 왔는데 허탕을 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촬영의 무대가 되고 있는 공예전문 W갤러리는 이미 ‘팔봉 제빵점’으로 변신해 정말로 빵을 팔고 있다. 그것도 극중 이름을 따서 탁구빵, 팔봉빵, 미순빵이다.

그동안 몇 차례 수암골을 왔다 간지라 풍광이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어느덧 달동네 수암골도 익숙한 취재처가 되버린 것이다. 그런데 출사를 나온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특히 3살 난 조카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왠지 청주사람으로서 그들을 안내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일었다. 결국 조카는 ‘수암골 꼬마’로 연출사진을 찍었고, 아마 지금쯤이면 수많은 블로거에 녀석의 사진이 올라가 있을지 모른다. 사실상 수암골에는 꼬마가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103가구의 80%가 노인이고, 초등학생 꼬마는 단 4명뿐이다.

예상치 못한 촬영이후 우리 일행은 급격히 피로해졌다. 결국 앉을 곳을 찾다가 인근 어린이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암골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먼저 한마디를 했다. “여기 문화를 팔아야 되는 것 아냐, 내가 아이스깨끼 통 들도 다니면서 물이랑 같이 팔아도 잘 팔릴 것 같은데(웃음).” 그러자 엄마가 “글쎄,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해도 청주는 곧 가난한 동네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며 뼈있는 말을 내뱉었다.

수암골은 과거의 기억만 있을 뿐 현재의 기억을 잘 팔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촬영하는 드라마들은 대개 배경이 1970~80년대다. 일단, 이곳이 관광지인지도 헷갈린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은 맞지만, 주민에겐 일상의 공간이 아니던가. 예전에 있었던 작은 평상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게 싫어서인지 치워버린 듯 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사라진 것에 대해 열광했고, 특히 신도로가 나면서 무참히 사라진 골목길을 찾아 탐닉하기 시작했다. 하늘아래 첫 동네 수암골은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드라마 촬영지로 뜨면서 하루아침에 관광객이 몰렸다. 수암골 주민들에겐 무엇이 더 행복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현재로선 화장실도 마땅치 않고, 편의시설도 갖춰지지 않는 채 관광객이 몰리는 게 달갑지 않은 눈치다.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고 불편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곳에서 수암골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해 문화를 팔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아이스깨기도 좋고, 달고나, 떡볶이도 좋으니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주민들 스스로가 팔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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