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희-이시종, 구천서-한나라당, 김진선-한나라당·민주당 관계 등 주목

선거엔 이런 금언이 하나 있다. ‘뚜껑이 열릴 때까지 아무것도 믿지 마라’. 수시로 표변하는 정치의 가변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선거’다. 지난 대선의 막판 분수령은 후보 단일화였다. 단일화가 되기까지 ‘노무현’은 최악(?)의 후보였다. 2002년 대선은 선거의 가변성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는 하룻 밤 사이에 YS에서 DJ로 승기가 넘어갔다. 투표 전날만 하더라도 YS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밤을 이용한 DJ의 물귀신 작전이 다음날 ‘성공한 쿠데타’로 이어진 것이다. 투표전 축하 인사까지 받았던 YS의 썰렁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때의 역전극은 이후 DJ에 대한 YS의 한(恨), 이른바 ‘결정적일 때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두고두고 각인됐다.

충북에서도 이런 사례는 많았다. 91년 부활된 충북도의회 의장은 정치권의 조율에 따라 당연히 조성훈씨(전 적십자 충북지사장) 몫이었다. 그러나 역시 ‘밤새 쿠데타’로 그 주인은 한현구씨(전 청주상공회의소회장)로 돌아갔다. 특정 대학교 학맥을 통한 세규합이 불과 짧은 시간내에 한씨에게 뒤집기 승리를 안긴 것이다. 95년 변종석씨(전 충북축구협회장)가 민선 1기 청원군수에 당선될 때 그는 투표날 일찌감치 귀가를 서둘렀다. 본인 스스로 당선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표도중에 기자들이 몰려 간 곳은 엉뚱하게도 그의 집이었다. 당시 자민련 바람이 그에게도 예상치 않은 승리를 안긴 것이다. 정치판은 선거 때 특히 요동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요즘의 정치환경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으로선 총선판도를 결코 속단할 수 없다. 정치판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숱한 말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내년 총선 역시 마지막 뚜껑이 열릴 때까지 상수(常數)보다는 변수(變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치권의 움직임과는 달리 충북에서도 내년 총선과 관련된 무게실린 변수가 서서이 생성되는 분위기다. 이중 일부는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막판 대세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벌써 지역정가에선 이런 움직임을 ‘빅 딜’로 표현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중 민감한 사안을 집중 취재했다.

"국회의원과 시장을 바꿔서 출마하자"

이시종충주시장의 총선출마는 거의 확실하다. 때문에 그의 거취는 지역정가에 대단한 폭발력을 안길 조짐이다. 현재 한나라당 소속인 이시장을 놓고 일단 표면적으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본인 역시 두 당 사이에서 당분간 줄타기를 해야 할 피치못할 처지에 놓였다. 정석대로라면 이시장은 한나라당으로 출마하면 된다. 그러나 16대 총선 실패후 지구당을 맡아 오랫동안 절치부심한 한창희위원장과의 관계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둘다 총선출마를 강행한다면 경선을 통한 후보결정도 가능하지만 이런 방법은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 이시장측이 경선 절대불가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경선할 경우 아무래도 현직 위원장이 유리할 뿐 아니라, 이시장은 정서적으로 경선을 기피한다. 둘간의 관계정립은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 때부터 줄곧 한나라당의 고민이었다. 당시 이시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아무래도 앞날을 우려한 한창희위원장 입장에선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재보궐선거 때도 둘간의 문제가 당내에선 첨예하게 거론됐다. 어차피 이시장이 내년 총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마당이라 서로 만만찮은 인물경쟁력 때문에 조율을 늦출 경우 자칫 당에 큰 위해를 안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선거 막판까지 해법도출에 실패한다면 이시장보다 오히려 한위원장 변수가 특히 신경쓰인다는게 지배적 분석이다. 쉽게 말해 한위원장이 독한 맘을 먹으면 둘다 망한다는 가설이다. 이런 고민속에 한가지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소위 역할교체다. 이시장이 한나라당 총선후보로 출마하는 대신 한창희위원장은 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이는 선거 때 서로의 ‘도움’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위원장의 반응은 “어림택도 없다”다. 그는 “상대측에서 분위기를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자가발전하는 것이다. 언제 한번 누가 말한 적은 있지만 일고의 가치도 없다. 최악의상황에서도 당당히 승부를 벌이면 되지, 소신을 지키려는 정치인으로서 이런 발상 자체가 거북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도지부장 신경식의원을 비롯해 당내 인사들이 이런 안을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여론은 만약 둘간의 전폭적 합의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장을 세 번 했는데 지지도 높은 건 당연”

현재까지는 정당 선택에 있어 운신의 폭이 넓은 이시종시장은 한나라당을 향해 압력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얼마전엔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며 중앙당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실시된 여론조사에 대해 한창희위원장측은 할말이 많다. 한 관계자는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이시장이 절대 유리하다. 한두번도 아니고 세 번째 하는 시장인데 인지도 등에서 당연히 앞설 수 밖에 없다. 만약 여론조사로 분위기를 판단하겠다면 이시장이 시장직을 내놓고 한두달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실시해야 신빙성을 얻을 것이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최근 후보간 지지율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일 경우 경선없이 공천심사위가 직접 공천권을 행사토록 하는 방침을 굳히고 있어 한위원장의 심기가 편치 않다.

이시종-한창희 관계는 중앙당 등 주변의 역학관계 때문에도 그 설정이 쉽지 않다. 지난번 당대표 경선에서 한위원장은 현 최병렬대표를 지지했다. 때문에 둘간의 관계는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할 정도다. 아무리 당내 의사결정 과정이 바뀌고 또 소장파의 목소리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런 관계는 무시할 수 없다. 이시종시장 역시 자신의 ‘몸값’을 배경으로 당의 수뇌부와 대화를 트지만 실무선에도 든든한 후원자를 갖고 있다. 최대표 특보로 있는 이성희씨다. 둘은 청주고 동기다. 지난 대선 때 이회장후보 특보를 지낸 그는 공화당 공채출신 당료로 지금도 최대표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호 청주 상당지구당위원장(전 충북도의회 의장)과도 동기동창이다. 이시장에 대해선 현재 신당인 열린우리당도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우리당 관계자는 “이미 중앙당과 모종의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우리로서야 들어 온다면 금상첨화다. 아직 정치적 변수가 많지만 가능하다고 본다”고 내다 봤다.

신당 원한다고 뜻대로 안 된다

이시장의 신당행은 현재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과의 관계에서 점쳐야 한다. 열린우리당 이원성의원의 출마가 건강문제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시장 카드는 신당측에서도 언제든지 꺼낼 개연성이 있다. 이미 열린우리당의 실세(?)와 교감을 가졌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러나 기성정치에 만만찮은 도전장을 낸 성수희(전 노무현캠프 국민참여운동본부 대외협력팀장) 맹정섭씨(중원발전연구소장)와, 이원성의원과 가까운 김호복씨(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에서 이시장이 마냥 러브콜을 받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 이들 신인 정치인들 중엔 “왜 열린우리당이 이시장을 끌어 들여야 하느냐”며 당의 정체성을 강력 문제삼으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실제로 성수희씨같은 경우는 “이시종시장이 신당과 연계돼 거론되는 자체가 구시대 정치의 답습이다. 국민과 약속한 상향식 열린정치를 실현하려면 이시장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며 잘라 말했다. 때문에 이시장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선택을 늦출 경우 자칫 위기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성수희씨는 분명한 정치적 신념으로 중앙에도 얼굴을 많이 알렸고, 맹정섭씨는 대선 후 노무현의 실세그룹에 속했던 이강철특보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시종시장과 이원성의원간의 불편한 관계 선상에서 대안으로 꼽히는 김호복씨는 열린우리당 주도세력인 이상수의원과 잘 통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선 이시종-김호복 관계를 저울로 비유하고 있다. 두 사람중에 하나가 만약 신당 간판을 달면 한 사람은 출마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