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명성 쫓지만 프로行은 잘해야 3%
차맛바람은 필수, 바짓바람도 불사해야

 스포츠 스타 꿈꾸는 아이들

“누가 봤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자랐던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매스컴을 통해서라도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스타들을 흠모한다.

텔레비전에는 자주 나와도 늘 손가락질을 받는 정치인들은 당연히 관심 밖이다. 언제부턴가 연예인이 선망이 대상이 되더니 이제는 스포츠 스타들이 수많은 아이들의 꿈이 되고 있다.

박찬호로부터 시작된 메이저리그 원정기, IMF로 멍든 국민들의 가슴에 각인돼 어루만진 박세리의 ‘하얀 발’을 시작으로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 축구의 본고장을 점령한 박지성 스토리, 피겨의 여왕으로 떠오른 김연아의 성공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린 심장을 들뜨게 만드는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상당수 부모들의 기대도 ‘혹시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에서 ‘운동에 소질이 있지 않을까’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상이 화려한 만큼 과정은 고되다. ‘어느 분야는 그렇지 않겠냐’는지적도 있겠지만 ‘엘리트 체육’을 기조로 하는 우리나라의 체육정책은 결국 소수의 절대강자에게만 생존을 허락한다.

아이와 부모들이 꿈꾸는 세계적인 스타는 차치하더라도 프로선수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부터가 희박한 확률을 전제로 한다. 프로 선수들이 평균15년 선수생활을 한다고 볼 때 잠재적 경쟁자인 초중고생 선수가 프로 1군에 들어갈 확률은 축구가 3%, 야구는 4%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편집자 주-

▲ 스포츠스타가 되기 위해 학생 선수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있다. 하지만 성공확률은 3~4%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사진=육성준 기자
‘스포츠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부모들의 지원도 대단하다. 억대 연봉의 스포츠스타가 된다는 것을 먼 나라 얘기쯤으로 생각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일들은 어느새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부와 명성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유혹은 수많은 10대들과 그의 부모들의 동경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스포츠 스타가 되기 위해 아이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프로스포츠 스타로 ‘성공시키겠다’는 부모들의 열성도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스타로 성공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정도의 가능성이기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험난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 청소년들이 스포츠스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인생을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한성 충청북도교육청 장학관은 “아이들은 꿈이 많고 가치관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대중의 환호를 받는 스포츠스타를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를 따르고 싶어한다”며, “부모들도 우리자식은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선택을 강요하며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이면에 내재한 어려움은 보지 못하고 화려한 면에만 도취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꿈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게 된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스타는 결국 부모 ‘꿈’
프로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열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과거에는 운동을 하면 밥벌이도 못한다며, 고개를 돌리던 부모들이 요즘은 자신의 생업은 뒷전으로 미룬 채, 온갖 뒤치다꺼리에 힘쓰는 등 자식의 미래에 뛰어들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식이 프로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면, 부모들은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은 못 입고 못 먹어도 돈을 대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다. 우리나라 스포츠 현실상 실력만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빽과 운도 따라 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낮이고 밤이고 경기장을 쫓아다닌다. 어쩌면 운동을 하고 있는 자식의 꿈보다 그들 부모의 꿈일 수 도 있다.

국내 운동선수들의 경우 프로팀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운동을 시작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 선수들의 경우 프로운동선수는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인생 역전의 ‘로또’라고까지 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골프에서는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이 유명하다. 유명 골프선수들의 뒤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다. ‘제2의 박세리’로 주목 받고 있는 청주 상당고 출신 김주연(28)선수도 마찬가지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아버지가 생업을 포기하고 캐디로 나섰던 것.

 그 결과 김선수는 2005년 제60회 US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주연의 성공은 도내 주니어 골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현재 30~40명의 10대들이 해외진출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다. 

강수철 청주상당고 골프부 교사는 “프로로 가기위해서는 미래만 생각하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밥 먹고 하루 열 시간 이상 골프연습만 한다. 부모들이 따라다니면서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생각지도 못한다”며 “한국 주니어선수들의 경우 공부도 포기하고 골프만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골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스포츠 스타의 영향으로 ‘나도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어려서부터 모든 걸 골프에 ‘올인’하는 불균형적인 발전은 성공의 영광 뒤에 숨겨진 어린 골퍼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세광야구 10년 동안 프로 4명뿐
세광고 야구부 졸업반인 김선기 투수가 지난4월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면서 도내 학생 야구선수들에겐 새로운 희망의 증거가 됐다. 하지만 세광고 야구부가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측에서는 걱정이 앞선다.

팀 선수 대부분이 대학진학은 물론, 프로진출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세광고 야구부원수는 29명.
수도권 대학을 진학하려면 전국대회 8강 이상은 들어야 가능하다. 프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우석 세광고 야구부장은 “대학이 늘어난 요즘, 전문대를 포함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야구를 해온 학생들이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프로리그로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그나마 수도권대학에 진학해 프로를 바라 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29명중 한 두 명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세광고등학교는 10년새 프로에 단 4명만이 진출했다. 그나마 현재는 군대에 가있지만 LG에서 뛰었던 박정진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2군에 있다. 그렇다면 10년 넘게 야구만 했던 어린 선수들은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면 졸업 이후에 어떻게 생활 하고 있을까.

10년전 세광고 야구부 졸업생 K씨는 현재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다. 그는 “야구장에만 있던 선수들이 전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부분의 친구들이 영업이나 자영업을 한다.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운동을 떠나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을 때  관련 분야의 지식이나 학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선망의 대상인 스포츠 스타가 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왔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지만 그 정상에 이르는 숫자는 극소수일 뿐이다. 10년 동안 세광고 야구부를 졸업한 학생은 줄잡아 300명. 그중 4명밖에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프로진출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야구에 전념하라고 말 못합니다”
이우석 세광고등학교 야구부장
 
학생들의 대학진학이 결정지어지는 9~10월이 되면 이우석 세광고 야구부장은 걱정에 휩싸인다. 프로에 발

판이 될 수 있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야구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항상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부장은 “항상 학생들에게 공부도 병행해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모들의 뜻은 전문대를 가더라도 오로지 프로로 갈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외국운동선수들은 운동은 물론 학업도 병행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고 강조한다.

“외국운동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자신의 진로 선택에 많은 시간을 갖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며 “스포츠마케팅, 스포츠관련사업,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에만 가야지 성공 한다’는 생각을 접고, 운동이 자신의 미래에 더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것 이라는 것이 이 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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