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사회문화부장

전교조 충북지부를 비롯해 전국공무원노조, 민주노총 등 20여개 시민·노동운동 단체와 진보정당 등의 연대기구인 충북교육연대가 지난 9일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에게 슬리퍼와 녹차, 찻잔 등을 선물하려다 거부당했다. 교육청으로선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선물이었기에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물 사건은 도교육청이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일선학교에 내려 보낸 ‘교육감 학교순방 안내’에서 비롯됐다. 이 문건에는 ‘교육감 순방에 맞춰 교육감 발사이즈에 맞는 285mm 크기의 실내화와 녹차, 찻잔 등도 갖춰놓으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고, 이에 대한 항의에 의미로 이날 선물 전달을 시도했던 것이다.

충북교육연대의 주장에 따르면 교육감이 도내 300군데 초등학교를 방문할 경우 신발 구입비로만 10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야 한다. 셈법인 즉, 교육감의 발 크기는 학교현장에서 일반적으로 구입해놓은 신발의 사이즈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 구입해야 한다. 게다가 군 단위 읍, 면지역에는 이렇게 큰 실내화가 없어 청주시 등지로 관외 출장을 나와야 한다. 신발값을 2만5000원으로 잡고 여기에다 관외 출장비 1만원을 더해 300개 학교를 곱하면 무려 1050만원이라는 예산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황당한 계산법 같지만 실제로 이 실내화 구입을 위해 청주 출장이 집행된 곳도 있다고 한다. 또 특정 브랜드의 제품으로 구입하려는데 현지에 없어서 이를 본사에 주문해 놓은 학교도 있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예산낭비도 낭비지만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가 충북교육계 수장의 권위를 드높이기보다는 교육구성원들과 반목과 질시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일선 학교에서는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문내용에 ‘수군거림’이 일어났던 것이고 결국 충북교육연대의 선물전달 퍼포먼스로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만약 이날 퍼포먼스가 계획대로 받아들여졌다면 교육감이 신발주머니를 들고 일선학교를 방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것이다.

교육감의 학교순방과 관련해 잡음이 일었던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 6월 작고한 고 김천호 전 교육감 시절엔 청주시내 일부 초등학교가 교육감 전용 신발장을 만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역시 돌이켜 보니 신발이 화근이었다.

특히 김 전 교육감이 작고하기 직전인 2005년 5월엔 옥천 모 중학교 김 모 교감이 교육감 영접을 둘러싼 학내 갈등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학교 관악부가 교육감을 영접하기 위해 수업시간에 동원됐고, 화장실에 수건이 준비되지 않아 교육감이 자신의 손수건을 사용한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발단은 작은 불씨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이쯤 되면 모시는 사람들의 과잉충성도 문제지만 교육감 스스로도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퍼포먼스’의 연출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다소 작아 불편한 슬리퍼를 신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신발주머니를 든다면 또 어떻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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