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미 청주시립교향악단 기획홍보

지난 22일에 있었던 2009 WBC 준결승전 덕분에 우리는 ‘베네수엘라’라는 국가명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번 경기 전까지는, 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그다지 친근한 국가는 아니었을 듯싶다. 그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난하고 불안정한 국가의 이미지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베네수엘라’는 남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강팀이었지만, 월드 ‘클래식’계에 있어서도 ‘의외로’ 강팀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인구 및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이 안 되는 나라이지만, 전국에 120여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60여개의 어린이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군(郡)단위마다 오케스트라가 있는 셈이다. 또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음악가들도 많다. LA 필하모닉의 최연소 예술감독인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더블 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 등이 있다.

이렇듯, 베네수엘라가 세계 음악 예술계의 강팀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엘 시스테마 (El sistema)’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음악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인데, 문화예술교육의 대표적인 성공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 125개 학교에서 일주일에 여섯 번 실시한다. 정부에서는 학비는 물론 야외 활동비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또한, 주빈 메타·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자진하여 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아이들을 전문 음악가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범죄와 마약에서 구출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프로그램 시행 후, 청소년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암울한 환경속의 아이들이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미래의 힘이 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아니,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가?

우리나라 학생들은 베네수엘라보다 안전하고 부유한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난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풍부한 감수성을 함양할 시기에 지식 경쟁 위주의 살벌한 교육 환경 속에서 음악 한 곡·미술 작품 한편 즐길 여유조차 없다. 오히려, 그것마저 수행 평가나 방학 숙제의 하나로만 여겨지게 현실이다.

‘엘 시스테마’가 말해주 듯, 문화예술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기에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분야이다. 그래서 정부적인 차원의 지원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제한받아서는 안 되고,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서도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꿈과 의지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얼마든지 열린 교육의 모습으로 방향이 나아가야한다. 공연장 등의 예술 공공 기관 및 공립 예술단체에서는 꾸준한 예술교육사업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학교, 정부, 학부모 모두가 이제라도 그 가치를 공감하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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