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티튀 응업 충북대 국문과 대학원생

나는 1997년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국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당시 신선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한국에 대한 기초적인 문학, 사회, 경제 지식을 베트남 선생님과 한국 선생님들한테서 접했다.

또 한국어를 배우면서 로맨틱한 한국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순수하고 풋풋한 대학생인 나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그저 좋기만 하고 장밋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나라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그게 나의 어떤 꿈보다도 절실했다.

꿈이 있어 나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2학년 때부터 전공을 선택한 후에는 반에서 늘 1. 2 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장학생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나라에 가서 공부하게 되면 나에게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만 했지 인생이라는 게 녹녹치 않고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한국말을 실제 한국에 와 보니까 간단한 일상대화를 뺀 나머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디. 나는 나의 실력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어학 코스 없이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 새 학기가 시작되어 공부하는 데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수업도 소화 못한 채 중간고사, 리포트, 그리고 기말고사 등 쉴 새 없이 해야 하니 부담감이 너무 컸다.

더욱이 음식도 안 맞고, 처음으로 엄마·아빠 품을 떠나 혼자 생활해야 하는데다 출신학교 명예를 걸고 장학생으로 온 나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기만 했다. 말을 잘 못하니 대인관계도 안 되고 결국 처음 4개월 동안은 내내 눈물로 보내야 했다.

이런 상태로 빠져 나갈 방법을 계속 못 찾은 나는 “다 포기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심지어 하지 말아야 할 가장 비관 적인 “죽고 싶다”와 같은 생각까지 다 해봤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갔다. 그러다 어느 햇빛이 가득한 화창한 날, 나는 본래의 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인생은 넓은 바다와 같은데 헤엄치지 않는 자는 익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극복해야 할 사막이 있다던데 나는 약한 사람을 태워 죽이려고만 하는 이런 사막을 꼭 극복하고 말거라는 결심이 생겼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도전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겨내서 남들한테 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후로 한국말부터 익히려고 수업 때마다 녹음해 놓고 집에 와서 다시 들어 정리하고, 한국 친구와 같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교수나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단어 공부를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다. 그때 내 꿈속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그 말은 오직 한국말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 많이 바뀌면서 마음을 좀 더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꼭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만 집착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즐기면서 공부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노력에서인지 점점 자신감은 회복되었고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피할 필요도 없고 겁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기분좋게도 성적도 나아졌다.

그리고 힘겹기만 하던 객지 생활도 행복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 열대나라인 내 고향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살은 물론 뼈 속 까지 시리는 혹독한 추위. 추워도 돈이 없어서 보일러를 끈 채 전기장판과 이불 하나로 겨울을 버텨야 하는 현실. 허기진 배를 학교식당에서 가장 싼 1200원짜리 밥으로 달래야 하는 상황까지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더 성숙해 지고 철이 들어 가족의 소중함 애국심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나 고달프고 고통스러워서 싫어했던 한국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꿈을 키워 줬고 나에게 힘들어도 값진 도전을 만들어줬고 무엇보다 베트남에만 있었다면 영원히 느낄 수 없는 멋진 경험들을 하게 해준 한국은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고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더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내편인인 남편과 딸, 그리고 시댁 식구들을 여기서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말 고마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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