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주 서원대 기획·홍보팀

중세시대 대학은 여러 가지 파격적인 특권을 누렸다. 국가에서 대학을 독립된 사회로 인정하고 병역, 복역, 세금 등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고, 당시에는 파격적인 자유여행권과 총·학장 자치 선출권 등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특권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대학 관계자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학내에서 별도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이를 처분하는 것까지 모두 대학에 일임하는 등의 치외법권이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의 전통은 1900년대 초반까지 많은 대학에서 유지되었다.

실제로 독일의 관광명소로 유명한 ‘학생감옥 (Studentenkarzer)’이 있는 하이텔베르그 대학은 1712~1914년까지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이 대학의 학생감옥은 바로 대학의 치외법권을 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술에 취해 누구를 때렸다거나 하는 등의 경범죄를 저지른 학생에게 대학은 경찰을 대신해 직접 벌을 내렸는데, 죄에 따라 1~30일간 학생 감옥에 가두었다. 수감된 학생은 사식도 허용되고 수업도 받을 수 있었으며,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옛날 공안시절의 서슬 퍼런 경찰력도 함부로 대학에 들어가 자신들의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실제로 5공 당시에도 여러 시국 사범들이나 노동운동가, 학생운동 조직의 수뇌부 등이 수배를 피해 대학에 장기간 피신하는 경우도 많았고, 경찰에 쫓기던 학생 시위대가 대학을 들어가면 경찰은 일단 정문 앞에 멈춰서 상부의 지시를 받고 나서야 다시 움직이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은 교수와 학생, 교직원 사이의 각종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재단문제로 불거진 구성원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고소 고발 건수는 학원갈 등이 본격화된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10여건에 이르고, 그 내용도 명예훼손이나 폭행, 감금협박, 업무방해, 외부소란 등 다양하다. 이 정도면 가히 고소고발 ‘난타전’이라 부를 만하다.

과거 중세시대 대학에서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이를 허락해 준 것은 대학이 신성한 곳이어서라기 보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지성의 전당의 장소인 대학에서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보다 대학 내에서 구성원간 스스로 규율하고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우리 대학 내의 고소고발 사건 하나하나를 놓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따져보거나, 피해를 입은 당사자 입장에서 보자면 혹자는 응당 고소고발을 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사이에서, 그 어떤 사회조직보다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학 내부에서 서로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내부문제를 외부의 판단과 조치에 맡겨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치외법권이 적용되던 당시의 대학과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교수와 학생 사이 존경과 존중의 사제지간 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라는 분석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관용과 자율, 합리가 살아 숨 쉬는 대학의 정신도 점점 변하는 것 같아 아쉽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