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교수·조치원마을이장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하는 일이 있다. 우선 밤새 모은 오줌 요강(페트병)을 들고 마당 한켠의 부춧돌 식 해우소로 가 양동이에 비운다. 부춧돌 식 해우소는 바깥 화장실의 일종인데 별로 복잡하지 않다.

양 옆으로 발을 올리고 앉을 수 있는 나무토막을 놓고 그 사이 앞쪽엔 오줌 받는 통을, 뒤쪽으로는 똥 받는 삽을 놓는다. 두 번째로 하는 일은 이 해우소에서 시원하게 똥을 누는 것이다. 앉은 채 밖을 내다보게 작은 창을 만들었다. 창이라기보다는 그냥 주먹 몇 개 합친 크기의 구멍이다.

이 창을 통해 보는 자연 풍경은 아침마다 새롭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모두 다르고 날마다 다르다. 지금은 집 근처 온 산이 갈색 투성이다. 간간이 소나무들이 초록색을 띠고 있지만 마치 아무 것도 자랄 것 같지 않은 황갈색 낙엽만 수북하다.

여름철에 녹음이 우거져 온 세상이 새파랗더니 시간이 가면서 그 창창하던 잎새가 다 떨어졌다. 인생도 그렇다. 그러다 얼마 전에 눈이 수북이 내렸을 적에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마치 세상이 순수 그 자체로 돌아간 것처럼. 누가 밀가루를 뿌려 세상을 하얗게 만든다 한들, 얼마나 뿌려야 할까? 어림없다. 자연 앞에 인간의 과학과 기술은 아무리 첨단이라 해도 보잘 것 없다. 이렇게 시시각각 해우소 창을 통해 내다 본 세상은 제 나름의 개성과 분위기가 있다. 사는 맛을 느낀다. 이런 게 시골의 맛이다.

게다가 경치를 즐기고 삶을 생각하는 사이, 이미 똥은 쑤욱 빠져나와 삽 위에 정갈히 누워 있다. 삽 위엔 재나 왕겨를 미리 깔아 놓아 똥과 삽이 붙지 않는다. 다음으로 할 일은 “똥오줌아, 잘 나와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 뒤, 앞의 오줌은 오줌 모으는 양동이에 붓고 삽 위의 똥은 들고 나와 거름 간에 털어 넣는 것이다.

그 다음 재나 왕겨를 삽 위에 좀 깐 다음 다시 원래 자리로 놓는다. 집 안에서 나온, 빈 오줌통(페트병)은 깨끗한 물로 헹군다. 해우소 바로 뒤에 작은 옹달샘이 고맙다. 그 물을 푸는 데는 작은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기신 고마운 똥바가지를 쓴다. 해우소와 옹달샘을 잇기에 적절한 ‘길이’다. 새 물을 페트병에 담으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고향에서 그 똥바가지로 똥오줌을 퍼서 똥장군에 담던 모습을.

그 당시에 나는 “어떻게 저 더러운 일을…”하며 “남들 볼까 부끄럽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페트병 요강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한편 거름 간에 쌓인 똥과 낙엽, 잡초와 음식물 찌꺼기, 재와 왕겨 같은 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훌륭한 거름이 된다. 가끔 요강 헹군 물을 거름 간 속으로 뿌려 준다. 오줌을 삭이는 데는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좋지만, 똥을 삭이는 데는 공기가 적절히 있어야 좋다.

그렇게 쌓여 발효된 거름을 약 1년 정도 지난 뒤 거름을 친다. 거름을 거름 간에서 끌어내 텃밭에 뿌리기 직전 상태로 모으는 것이다. 때마침 조카사위가 될 젊은 친구가 오랜 만에 놀러 왔기에 같이 장화를 신고 작업했다. 올해 우리 텃밭에 쓸 거름이 이 정도면 되겠다 싶다. 뿌듯하다.

거름을 치고 나서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 내가 먹은 밥이 똥이 된다. 똥은 거름이 된다. 거름은 텃밭으로 간다. 텃밭 미생물이 거름을 분해한다. 농작물은 미생물이나 거름이 만든 양분을 먹고 자란다. 그 작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을 우리가 먹는다. 또다시 밥이 되고 똥이 된다. - 아, 이렇게 우리 살림살이가 순환되면 이것이 가장 건강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온갖 인공물을 만들어 ‘영원무궁’할 것처럼 착각하는 사이에 바로 이 순환 형 살림살이 구조가 갈수록 파괴된 것은 아닌가.

나아가 이런 식의, 소박하되 순환적인 살림살이를 복원하는 것이 지금의 ‘경제 위기’에 대한 가장 건강한 해법이 아닐까? 우선 거품과 투기, 허상과 부채에 기초한 경제는 번영하기보다 위기에 빠지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

다음으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 구조 및 생활 구조는 자원의 한계, 경쟁의 한계로 말미암아 오래 못 간다. 게다가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행복이라 보는 가치관은 결국 세상을 망치고 자신을 망친다. 소박하고 순환하는 살림살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돌파구다. 똥거름이 고맙고 소중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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