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종(청주시청)사회복지 공무원

초등학교시절 방학숙제 중 가장 어려운 과제는 일기였다. 매일매일 하루를 정리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던 나이였고 매일 일기를 쓰는 것 또한 습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학이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은 가중되었고 결국 벼락치기 일기를 쓰게 되었다. 한꺼번에 쓰는 것도 큰일이지만 무엇보다 보여주는 일기였기에 종결은 도덕적인 반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잘못’을 찾아내는 것이 부담이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인 아이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담임교사에게 편지를 쓰는 것만 같았다. 친구와 싸움에 대한 중재를 요청하거나, 아빠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때론 담임교사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재미있고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들 이었다. 그리고’참 잘했어요’라는 답변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되물어 보기도 하고 의견을 기재하는 답장도 있었다.

지난 해 여러 방송사 시상식에서 한 해 동안 시청자를 웃고 울게 만들면서 마음을 당기게 하며 각양각색의 인물을 표현한 연기자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그런데 수상자들 마다 매번 유창하고 긴 인사말에 대한 누리꾼들의 거부감이 한 동안 회자되었고 “글쓰기가 쓰는 사람 위주가 아닌 읽는 사람 위주가 되어야 하듯. 스피치 역시 하는 사람 위주가 아닌 듣는 사람, 즉 청중 위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두 잊은 듯 했다”라는 논평도 있었다.

간혹 보여주는 글을 쓰게 될 때면 평소 메모지를 보거나 독서를 하다가 밑줄을 그었던 문장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도덕적 반성문과 같은 일기 형식의 글을 쓰는 습관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지 결국 도덕적 반성꺼리를 찾는다. 양심과 사회적 잣대에 비추어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이지 못한 비도덕적 비판은 보여주는 글쓰기의 찾기 쉬운 주제일수도 있었지만.

‘도덕’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다가 박경리 작가의〈토지〉 “애국심이나 국수주의는 출발에 있어선 아름답고 도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추악해지고 비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거다”라는 인용 문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진정성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이제껏 보여주는 글과 말과 행동이 비도덕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직접 비판과 채찍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은 강박적 도덕의 나쁜 습관으로 보여주기가 목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너도 없는 사회만 있는.

그리 곱지만은 않은 지난 연말의 말들이 해가 바뀌었는지를 모르는지 아직까지도 새해에 머물며 차갑게 하고 있는 듯 하다. 실망, 실종, 허탈 등등. 문득 깊은 골은 빗물을 많이 받을 수 있듯이 실망과 실종 등에 “희망”이라는 말이 더욱 값어치가 크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까지 나쁜 습관으로 인해 듣는 사람, 읽는 사람보다는 내 생각만을 위해 만들어 냈던 글과 말들을 기꺼이 버리고 희망을 더 흥얼거려야 겠다. 깊고 버릴수록 채울게 많다고 하고 또한 동화 속 ‘거북이와 토끼의 달리기 경주’에서 늘 부지런해야 한다고 거북이에게서만 강압적으로 가졌던 도덕의 틀도 깨보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바닷속에서의 경주를 상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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