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위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우리는 한 해 동안 날아오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절히 기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는 일과 나는 일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일로 보이는데 새해를 맞는 것도 가지 끝에 서는 것과 같은 단계일 듯 싶습니다. 소처럼 맑고 순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걸기 위해 높은 곳, 전망 좋은 곳을 찾아 산에 오릅니다. 지난해 이맘때 네팔 히말라야 산자락 마나슬루에 다녀왔습니다. 열흘 동안 가파른 고갯길을 걸어 올라갔다가 닷새 동안 내려오는 고행길인데요.

해발 5200m가 넘는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덜어 내고 비우며, 인내하는 마음이 없다면 곧 고산병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여행이기도 하였습니다.

말수도 줄이고, 행동 또한 천천히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게으른 듯 보이는 느림과 등짐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심한 두통과 설사, 구토를 일으키는 고산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또한 8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과 장대한 협곡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터럭처럼 미미한 존재인가를 확인하고 그 산자락 벼랑 끝에서 좁다란 다락 논을 부치며 사는 원주민들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사는지 배우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새해의 전망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새해벽두엔 모두들 희망을 갖자며, 두 주먹 불끈 쥐라며 서로에게, 또는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매가리없이 답답한 말만하게 됩니다.

이유는 2009년 기축년의 국내, 국제적 상황이 너무나 혹독하고 엄중한 때문이며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유독 우리나라만이 시장우선주의를 홀로 밀어붙이고 있다는데 답답증의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과거 20년 동안 학습해 온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회학을 배웠습니다. 경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우선주의, 고환율정책을 밀고나간 경제 책임자를 보며, 그에게 무한신뢰를 보내는 국정책임자를 보며, 지도자의 덕목을 배웠습니다.


군사적 경쟁과 전쟁위협이 없는 통일국가가 우리 민족이 반세기 동안 추구해 온 국가적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이해를 넓히며 신뢰를 쌓아 온 지난 10년을 부정하면서 꼭 되돌려 놓겠다는 듯이 정책을 세우는 고집스런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때문에 한참을 잊고 지내던 과거 군사정권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합니다.

또한 거대 신문재벌에게 방송까지 열어주려는 법을 만들기로 했다는 일도 있습니다. 이들이 미디어산업의 지평을 넓혀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보며 이들을 통하여 여론을 가지런히 정돈 정리하고 싶은 권력의 판타지를 읽습니다.

지역간 계층간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방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국가가 나서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기업의 지방이전을 돕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이를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일격필살의 수도권 부동산 규제완화정책을 턱 내놓았습니다.

정말 처연한 묘기입니다.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약탈이나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수직적 단계의 자본주의와 불평등과 불균형 해소를 뿌리로 하는 수평적 단계의 민주주의가 어쩌다 한 집 살림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배운 많은 양의 학습이 결국, 우리사회를 크게 피폐하게 하여 10년이 아니고, 한 30년 뒤로 물러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새해 벽두를 어둡게 합니다.

나뭇가지 위로 무당벌레가 기어오릅니다. 진딧물을 잡아먹는 이 녀석은 먹이가 없으면 다른 가지로 옮기는데 가지 끝까지 올라가서야 날아오릅니다. 가지를 꺾어 거꾸로 세우면 목표를 곧 수정하여 새로운 가지 끝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가지 끝에서 날아오르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듯 쉬었다가 날개를 폅니다. 아마도 딱지날개를 열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로 보입니다.

비상하려면 이것저것 점검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요. 기는 일과 나는 일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일로 보이는데 새해를 맞는 것도 가지 끝에 서는 것과 같은 단계일 듯 싶습니다.

어느 곳에 다녀오셨는지요?
무엇을 소망한다 기원하셨습니까?

우리는 한 해 동안 날아오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절히 기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사람이기에 새해벽두엔 이런저런 기원을 해봅니다.

강원도 원주 솔골에는 동학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묘지석이 있고 거기에 이런 말씀이 씌어 있습니다. “천지가 부모요 부모가 천지이니 천지부모는 일체다. 세상만물 모든 것이 서로를 낳고 함께 키운다.” 이 말은 資(돈)가 本(아버지)이 되는 작금의 세계에서 인본주의, 자연주의로 돌아가면 살 길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마나슬루 봉우리 아래 사마가온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해마다 1월에 모여서 기장을 가루내어 경단을 만듭니다. 혹독한 겨울, 저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데도 배고픈 새들에게 먹이로 숲에 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작지만 아름다운 보시를 통하여 업을 덜어내며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소처럼 맑고 순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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