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국장

올 한 해도 따뜻하게 마무리하기는 틀린 것 같다. 지금 청주지역에는 친족에게 성폭력 당한 10대 소녀 얘기로 떠들썩하다. 충북에 살고 있는 B모양은 지적장애 3급이다. 그런데 소녀는 지난 2001년부터 7년여 동안 자신을 키워 온 할아버지·큰아버지·작은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내지 성추행을 당해 왔다. 장애인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산 소녀는 인면수심의 친족들에게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짓밟힌 것이다.

이런 사실이 한 아동보호기관에 제보되면서 사건화 됐으나 가해자 3명 모두 집행유예 3~4년을 선고받았다. 청주지법은 지난 11월 20일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워 왔고,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점, 한 피고인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 가족도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점 등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몇 년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성폭행내지 성추행을 행한 인면수심의 친족들은 ‘죄 없음’과 다름없는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자 충북여성장애인연대를 비롯한 전국의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여성상담소·장애인부모회·여성단체 등이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들고 일어났다. 충북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유관단체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규정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강간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상, 장애인을 강간하면 역시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이를 보더라도 집행유예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임에 틀림없다.

담당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다른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피고인들의 성폭력 범행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피고인들에 대하여 중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나···피해자의 정신장애 정도 등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가족인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계속해서 이 소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성폭행 했어도 친족이고, 장애인은 이런 친족들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이들과 살기 싫다며 이미 집을 나갔다. 그는 요즘 한 아동보호기관에서 지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사회에 지적장애 여성을 돌보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이면서 장애인은 인권보호의 가장 어두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국적으로 여성장애인쉼터는 단 4곳에 불과하다. 때문에 B양처럼 가정을 떠나야 하는 여성장애인은 갈 곳이 없다.

담당판사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B양이 있어야 할 곳은 집 밖에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러나 말도 안된다. 차제에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비장애인 같으면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들과 같이 살 수 있겠는가?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라고 ‘친족이기를 포기한’ 사람들과 다시 한솥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아니,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뒤집혀야 한다. 법에 있는 형량조차 지키지 않고 ‘터무니없이 가볍게’ 내린 형량은 번복돼야 한다. 소녀의 할아버지·큰아버지·작은아버지는 동정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이명박정부 들어 우리사회가 거꾸로 간다고 하지만 이번 판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해자에게 중형을 내리고 진정한 장애인 보호기관을 만드는 것,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서 소녀가 다시 힘과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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