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지고있습니다. 가난을 못 이긴 30대 주부가 세 자녀와 함께(7.17 인천), 컴퓨터에 중독 된 대학생이(7.21.서울), 성적을 비관한 고교생이(7.24.서울), 쌍꺼풀 수술을 잘못 받은 50대 여인이(7.27.서울) 자살을 합니다.

90대 할머니가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7.28.광주), 일가족 4명이 빚 때문에(7.29.완주), 30대 주부가 남편의 빚을 고민하다 두 자녀와(7.31.울산), 여고생이 원치 않는 임신을 비관해(7.31.서울), 아버지가 자살한 아들의 뒤를 따라(8.2.서울), 재벌회장이 대북 사업의 고초로(8.3.서울), 묘령의 20대 여인이 살기 싫어(8.6.서울), 선임 병의 성폭행과 구타를 견디다 못한 사병이, 전경이(7.9.육군X부대 외) 줄줄이 자살을 합니다.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고, 노끈으로 목을 매고, 농약을 마시고, 지하철전동차에 몸을 날려 목숨을 끊습니다. 늦은 봄날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처럼 날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2003년 여름, 대한민국의 풍경은 그렇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 나라의 총 자살건수는 1만3055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한해 전 1만2277건보다 6.3%가 증가한 숫자로 하루평균 36명, 1시간에 1.5명 꼴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IMF로 고통을 겪던 98년 1만2458건에 이르렀던 자살사건은 99년 1만1713건으로 줄었다가 2000년(1만1794건)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높은 나라는 덴마크 독일 스웨덴이며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인데 우리 나라는 OECD(경제개발기구)30개국 중 5위를 차지해 ‘자살대국’의 불명예를 안고있습니다. 50년대 자살율이 높던 일본은 칼로 배를 가르는 ‘하라기리’(腹切)라는 자살형태 때문에 웹스터 영어사전에까지 올라있습니다.

자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종교 철학 윤리관에 따라 나라마다 인식이 다릅니다. 자살 긍정론자였던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인간의 생명은 그 사람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그 사람의 것”이라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허용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부정론자인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기의 감옥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수인(囚人)”이라면서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자살은 인륜에 반하는 것”이라고 ‘목민심서’에서 비판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신경쇠약, 실연, 병고(病苦), 생활고, 가정불화, 사업실패, 장래에 대한 고민, 염세(厭世)등이 주요인 인데 근년에 와서는 경제적인 고통, 즉 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라거나 생활고가 주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자살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방성이 강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에서 염세철학자 티몬이 무화과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자 수많은 아테네시민들이 잇달아 무화과나무에 목을 매달았다는 기록은 자살의 모방성을 말해주는 좋은 예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꼬리를 잇는 동반자살신드롬, 잇단 아파트 투신 역시 그와 마찬가지일 터입니다.

동기가 무엇이든 자살이 유행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개인을 넘어 사회,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하루에 36명씩이나 목숨을 끊어 한해 자살자가 1만3000명이라면 그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난다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기에 말입니다. 월남전 때 우리국군이 참전해 10년 동안 전사한 숫자가 5000명이었습니다.

자살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 그 막다른 상황에서 선택할 것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사회의 자살신드롬은 사회가 그 주범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야 할 것인가, 죽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라며 노도(怒濤) 몰아치는 해안 절벽에서 절규하던 햄릿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삶과 죽음사이를 오고 가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한 두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없지 않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는 교회당들, 황금으로 도금한 사찰의 불상들은 오늘 이 땅의 자살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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