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정몽헌 회장 투신 자살 사건, 양승길 전 비서실장 향응 사건, 굿모닝 시티 분양 비리 사건, 일가족 보험 사기단 사건, 대통령 친인척 사칭 사기 사건, 카드 빚을 갚기 위한 납치 살인 사건, 각종 뇌물 수수 사건 등 사건이 꼬리를 물고 지면에 오르고 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문득 문득 몇 년 전 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 교포들간에 떠돌았던 ‘재미없는 천국 미국, 재미있는 지옥 한국’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너무도 당당하게 “정의가 통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라고 이민 이유를 밝힌 60대 초반의 한 교포의 말은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 메아리친다. 그러나 요즘의 사건들을 보거나 작년 국제 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부패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02개국 중 40위로 평가된 것으로 보아도 탈 많은 나라임을 부인하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교포들이 우리 유학생들에게 베풀어 준 관심과 배려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한국에서의 추억담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은 여전히 이 나라를 절절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그들에게는 이 나라가 절대 버릴 수도 또 버리고 싶지도 않은 데 자꾸 밖으로만 내몰아 치는 일그러진 가정과 같은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천국의 소식이 많이 있다. 최근 불우 이웃을 위해 100억대의 부동산을 기증한 사업가, 5000만원의 전 재산을 기부한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들이 있다.

이런 천사들이 이 땅에 있는 한,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한, 우리는 적어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미국만큼의 물질적인 풍요는 없다해도 정의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정의라는 이름만으로 힘을 얻고 또 힘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 말이다.

최근 기업의 윤리 경영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제고시키는 최고의 투자 전략이라는 것이 입증됨에 따라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기업 쪽에서 더욱 크게 들리고 있다. 윤리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신세계 백화점은 기업 윤리 규정을 제정했고 KTF는 ‘BEL(Business Ethics Leader)’이라는 윤리 경영 슬로건을 내걸었다. 심지어 2∼3년전만해도 사채업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대금업체중에는 투명 회계·불법 추심 근절·소비자 신뢰 확립으로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최초로 대금업 경영 모델을 제시한 A&O도 있다.

이렇게 기업이 윤리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외치고 있는데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기심은 개인보다 집단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조직된 기업에서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게다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기업의 윤리는 경영자 등 구성원의 태도나 행위이외에도 정치와의 담합, 정부의 신뢰성 정도, 사회의 관심이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우리 기업의 노력이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고 심히 염려된다. 기업 윤리는 기업의 노력만으로 실천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의 요란한 윤리 규정이나 윤리 경영 슬로건은 투자 이익을 높이려는 목적보다는 오히려 부패한 기업 밖의 세상으로부터 기업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접근 금지’ 사인에 더 무게가 실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고리의 앞뒤를 연결하다보면 적어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를 꿈꾸는 우리의 소박한 소망은 어느새 저만큼으로 달아나 버리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 말한 가치가 있는 나라’의 주춧돌은 우리 개개인이라는 것이다. 정의를 존중하고 부정 부패에 대해 담대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모여 세우는 것이다. 흐트러져 있는 우리가 우리 기업을 흔들고 사회 전체를 ‘살 맛 안 나는 지옥’에 빠뜨린 채 계속 재미있는 가십거리만을 제공해 주는 그 속에서 기업 윤리 경영이나 깨끗한 정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어떻게 기대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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