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해오는 소식이 답답하여 밤을 새워 차를 몰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조각된 러쉬모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50개 주의 주기가 도열된 산의 정상에는 거대한 암반의 3/4를 정성껏 쪼아내 200년 역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대통령 4인의 얼굴들을 아로새겨 놓았다.

대통령의 얼굴을 둘러보면서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평소 장난스레 싱글거리기를 좋아하던 태도와는 달리, 조금은 과장된 듯한 근엄함과 자랑스러움을 얼굴 가득히 품고 대통령의 얼굴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미국에서 1년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대통령은 통합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느 당 출신이든, 몇 표 차이로 이겼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그가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고 한들, 그것이 대통령의 정치적 통합 역할에 하등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당선의 결정판이 된 플로리다 선거에서 투표자수 582만 5천 43표 가운데, 단지 537표 차이로 이긴 부시가 그 후 낮은 득표율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성(性)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된 클린턴이 국내외 정치를 아우르는데 자신의 추문이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다.

거대한 암반에 새겨진 4명의 대통령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며 흐믓해 하는 저들, 미국인들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본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조국의 탄생에 헌신한 대통령이 있었으며, 조국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한 대통령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지난 60여년의 현대사 가운데 통합의 상징이자, 정치적 사표가 된 대통령을 단 한 명도 가져보지 못했다.

건국에 앞장섰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반공노선과 반독재 노선간 갈등의 원인이 되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발주의와 민주노선간 갈등을 심화시킨 장본인의 하나였다. 전두환, 노태우 양 대통령은 군부통치와 문민통치간의 갈등을 증식시킨 장본인이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통치를 확립했으되, IMF 참화를 불러드린 무능한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전임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협력’의 신기원을 열었으나, 아들들의 비리와 현대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이다.

이러한 불행은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접하는 보도를 통해 대통령이 통합과 해결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분열의 중심에 서있음을 확인한다. 북핵 문제로부터 경제 문제, 신당 문제, 새만금 문제, 핵폐기장 문제, 그리고 그밖에 도처에 깔린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대통령이 통합과 해결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있음을 확인해 본다.

오늘 우리 시대에 대통령이 통합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새로운 변화 시도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이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대통령이 설정한 새로운 리더십이 착근하지 못한데도 또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디에 있든간에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을 중심에 놓고 극한 대립이 전개되고 있고,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통합력과 권위가 점차 유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통합력과 권위 망실을 보면서, 이것이 과도기 사회가 겪을 수 밖에 없는 내홍임을 알면서도 아쉬움을 느낀다. 독재-반독재의 대립이 격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서의 통합력은 어차피 힘에 의존한 위선이 될 수 밖에 없기에 가증스럽다고 할지라도, 오늘 날의 통합력은 성격을 달리한다. 오늘 이 시대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재단하던 시대가 아니다. 격심한 국제경쟁의 파고와 빠른 환경 변화 속에서 갈등은 끝없이 재현되고 있고, 이 갈등의 봉합은 결국 대통령의 통합력과 정통성을 지닌 국가 권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대통령 통합력의 유실은 국가 자산의 커다란 손실일 수 밖에 없다.

 대통령 통합력의 유실이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리더십과 비전이, 그리고 참모들의 조언과 행동이 시대 환경과 맞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도 생각해 볼 일이다. 변화가 가져올 손실이 두려워 실상을 사실 이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가운데 대통령을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무엇보다 과거 독재시대의 잔영인 흑백논리에 젖어, 이미 제거해야 할 적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 채, 끝없는 소아적 자기파괴를 일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러쉬모어 산의 링컨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있다 “ 우리는 적이 아니고 친구입니다. 우리는 결코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의 열정이 이를 어렵게 할지라도, 우리가 지닌 애정과 화합의 연대를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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