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참으로 오묘하다. 그저 수이기만 한데도 너무도 많은 역할을 한다. 특히 통계가 그런데, 통계는 너무도 많은 거짓을 담고 있다. 세 가지만 말해보자.
첫째,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벽돌을 맞고 죽은 통계가 백만분의 1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백만분의 1만큼만 죽는다고 생각하지, 내가 곧 백만명 가운데 한 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용은 분명 한 사람이 ‘꼴까닥’ 죽어야 성립함에도, 한 명의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백만분의 1만큼만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 누군가 한명은 반드시 죽어야 그 통계는 맞아떨어지는 데도 말이다.

둘째, 비행기 사고로 죽는 것이 어떤 교통수단보다 통계적으로 적단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비행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위 같은 주장은 거리를 기준으로 했을 것이다. ‘백만 마일 당 사망률’ 이렇게 이야기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습관상 사람은 비행거리를 따지기보다는 비행시간을 따진다. ‘비행기로 5시간 걸려’라고 말하지 몇 Km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지 거리가 아님에도 거리기준의 통계를 내놓는 것이다. 게다가 비행기는 떨어지면 거의 모두가 죽는다. 그 공포감은 여느 교통기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그 통계는 비행기 회사에서 만들어낸 것일 것이다.

셋째, 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완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계는 정말 이상한 수학이다. 왜냐하면 통계는 경험과 너무도 밀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과는 전혀 상관없는 수학과는 논리적 체계를 달리 한다. 통계가 이러저러한 사실을 모으고 또 모아서 낸 귀납적인 상황이라면, 수학의 원리는 경험에 앞선 대전제로부터 하나씩 끌어낸 연역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귀납이란 모래알을 한 주먹씩 뭉쳐 모래성을 쌓는 것이라면, 연역은 털실로 만들어진 옷의 끄나풀을 색실별로 천천히 풀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너무도 다른 행위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계가 숫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수학처럼 진리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공연히 믿고 따른다.

아래는 6월 13일 중앙인사위원회 조창현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으로 바로 우리가 말하는 ‘통계’를 담고 있다. 숫자 속의 비밀을 읽어보자. 제목은 ‘국가행정기관 고위공무원 인적구성현황 분석결과’이다.

<국가기관 소속 4급이상 공무원(2003.4.23.기준) 출신지 및 출신학교 분석>
▶ 정무직: 영남(34.6%), 호남(27.9%), 경인(18.3%), 충청(11.5%), 강원(4.8%)순임
▶ 직업공무원: 영남(31.3%), 호남(26.5%), 경인(19.4%), 충청(16.8%), 강원(4.4%)순임
▶ 인구모집단과 비교할 때, 특별한 지역편중현상은 나타나지 않음
- 국민의 정부 말기 악화되었던 영호남간 불균형(영남 과소 ↔ 호남 과다)이 크게 해소됐음
* 영남 24.3% : 호남 40.8% ⇒ 34.6% : 27.9%
* 비교기준인 인구모집단은 계급별로 연령이 달라, ‘49년 또는 ‘55년 인구통계를 사용하여야 하나, 양자가 크게 차이가 없어 비교의 편의를 위하여 ‘49년 인구통계를 사용했음.

참고로 이 통계는 1949년과 1955년의 인구모집단을 지역별로 정리한 도표를 첨부하고 있다. 머리가 다소 지끈거리겠지만 이 글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 부득이 소개한다. 1949년의 지역별 인구모집단의 크기는 경인이 20.8%, 강원 5.6%, 충청 15.7%, 호남 25.2%, 영남 31.4%, 제주 1.3%다. 그리고 1955년의 그것은 경인이 18.3%, 강원 7.0%, 충청 15.9%, 호남 24.4%, 영남 33.1%, 제주 1.3%다.

그런데 독자들께서 간과하면 안될 단서도 함께 말씀드려야겠다. 위에서 밝힌 인구모집단에는 출신지가 드러나 있지 않다. 통계청 발표 2000년도 지역별 인구비율은 경인 46.3%, 강원 3.2, 충청 10.1%, 호남 11.3%, 영남 28.0%. 제주 1.1%다. 이 숫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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