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상당공원 앞을 지나가다 깜짝 놀랐습니다. 네 거리 한쪽 모퉁이에 세워진 대형 광고판에 오가는 시민들의 눈이 쏠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주제폐지충북남성850인선언”. 그야말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호주제폐지충북시민연대’이름의 이 캠페인 광고는 분명 파격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건 그 광고판은 호주제 폐지가 시대의 화두가 돼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보수성에 관한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청주, 이 도시에 이런 파격적인 광고가 나붙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유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마디로 ‘나라 망할’ 일 입니다.

1957년 민법제정이래 기회있을 때 마다 여성계가 끊임없이 제기해 온 호주제 폐지운동은 최근 2, 3년전부터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 의해 가속화 돼 왔고 지난 5월23일 민주당 이미경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법률안(민법중개정법률)이 제출됨으로써 호주제는 이제 그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성계는 호주제를 남녀차별의 상징이요, 비민주적 악법이라고 주장합니다. 호주제는 남성 우월의식을 법의 이름으로 제도화한 것이고 합리적 이유없이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호주제가 성립된 배경에는 남성은 항상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그 속성상 남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종속적인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자는 혼인하는 순간부터 불평등한 관계에 서게되고 그러한 불평등은 눈을 감을 때 까지 평생동안 이어지게 되는 것이 이 제도의 폐해입니다.

현행법에서 호주의 승계는 ①아들 ②손자 ③미혼의 딸 ④아내 ⑤어머니 ⑥며느리순으로 되어있습니다. 법은 쉽게말해 1살짜리 손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70세의 할머니도, 40세의 어머니도, 장성한 고모도 모두 거느릴 수가 있습니다. 넌센스의 극치라고 하겠습니다.

유림(儒林)에서는 호주제는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전통문화요, 미풍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호주제폐지를 추진하고있는 여성부의 의견은 다릅니다. 호주제는 중국의 종법제와 일제 식민지의 잔재이지 고유의 전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후기 중국에서 들어 온 종법제가 강화되면서 아들만이 제사를 지내게 되고 제사를 통해 가계를 계승한다는 관념이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호주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과 같은 호주제가 들어 온 것은 일제 때 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명치민법에있는 호주제를 들여와 조선의 관습이라고 왜곡하면서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강제로 이식해 제도화 했습니다. 일본은 2차대전 직후 양성평등조항을 도입하면서 헌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호주제를 폐지합니다.

하지만 독립이 된지 58년이 된 우리는 여태껏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보물처럼 애지중지 해 오고 있는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일본이 남기고 간 일본도를 조상이 남긴 ‘전래(傳來)의 보도(寶刀)’라고 간직해 오고 있는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지금 지구상에 호주제가 있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 뿐입니다. 그 때문에 유엔에서조차 1999년, 2001년 두 차례 우리 정부에 호주제를 폐지하라고 권고해 온 바가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호주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산입니다. 전통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킬 것은 지켜야하지만 관습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하는것은 아닙니다. 전통이라고 상투를 다시 틀고, 고려장을 다시 부활시키자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을것이기에 말입니다.
일언이폐지하고(一言以蔽之)하고,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 “호주제, 폐지돼야 마땅합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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