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으로 시집보낸 엄마들의 애틋한 모정
베트남 오지마을 여성, 한국 남성 선호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 다문화공동취재단은 태국과 베트남 출신 국제결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현지 취재를 통해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된 배경을 파악하고, 그들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공적인 다문화사회로 변화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이미 앞서서도 밝힌 바 있듯 한국행을 택하는 국제결혼여성의 친정집은 대부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듯 그들의 바람은 오직 낯선 나라에서 딸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뿐이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나 신흥 대도시 호치민에 거주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국제결혼을 희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 여성의 상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며 반한감정마저 나타나고 있다.

현지 브로커들이 국제결혼 대상자를 물색하는 곳은 도시와 떨어진 시골마을, 더 들어가 오지마을에 사는 여성들이다.

호치민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4시간여를 가면 메콩강 하류를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또 다시 1시간을 달리면 메콩강 유역 작은 도시 건터시에 도착한다. 건터시의 한 식당에서 한국으로 딸을 시집 보낸 3명의 어머니가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티베(23·부산), 루수엉(22·부산), 판티투엔(24·부산)이 그들의 딸이다.

▲ 호치민시에서 5시간 떨어진 건터시. 국제결혼이 금지된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국제결혼이 성행하고 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국제결혼을 한 마을도 비일비재. 건터시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티베, 판티투엔, 루수엉 씨의 어머니(사진 왼쪽부터)는 삶의 고단함보다 낯선 땅으로 간 딸 걱정이 앞선다. /공동취재단
‘가족만 행복해진다면’
건터시는 호치민 인근 지역에서도 한국과의 국제 결혼률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루수엉 씨와 판티투엔 씨의 집은 불과 20m 거리다. 특히 조그만 개천을 두고 이어진 7가구 가운데 5가구의 딸들이 한국인과 결혼했다.  김티베 씨의 경우 22쌍이 함께 합동결혼식을 치렀을 정도다.

친정 부모와 함께 도착한 마을은 건터시에서도 차와 오토바이를 이용해 1시간가량 좁은 오솔길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오지였다.

마을의 주민들은 인근 개천에서 옛날방식으로 고기잡이를 하거나 우리나라로 치면 면소재지 정도로 나와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김티베 씨 가족은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가 생업에 나서지 못하면서 생활이 더욱 막막해졌다. 학교를 다니던 막내 동생도 학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어머니 김티남 씨(53)는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가 몇 년 전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 그 친구에게서 한국으로 시집가면 잘 살수 있고, 가정형편에 보탬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국으로 시집가겠다고 결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아이의 말에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가슴이 아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2006년 7월 딸을 한국으로 시집보내고 딸이 어렵게 보내준 돈을 밑천삼아 읍내에서 죽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꾸려가며 막내아들도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김티베 씨의 아버지 김사우 씨(58)는 딸이 시집가는 날이 돼서야 결혼사실을 알게 됐다. 김사우 씨는 딸이 국제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했다. 그는 “딸을 사랑한다. 딸을 멀리 보내고 살 자신이 없어 반대했는데 결혼식 날 이야기를 듣고 체념했다”고 말했다.

부산으로 시집 간 루수엉 씨의 친정은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가 함께 살고 있었다. 루수엉의 할머니 사우 씨(78)는 죽기 전에 손녀사위를 한 번 보는 게 꿈이다. 루수엉의 어머니는 “사위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딸에게 들으니 굉장히 잘해주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3년 전에 딸을 시집보낸 판티투엔의 어머니는 “지금은 딸 부부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도 한 번씩 보내주는 돈이 이곳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 걱정은 하지 않고 열심히 살길 바란다”고 취재진 편으로 딸에게 마음을 전했다.

주기적으로 브로커 방문
건터시에서 만난 세 가정은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딸로부터 연간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를 송금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러움이다. 한 마을주민은 취재진을 붙잡고 자신의 딸도 한국으로 시집 갈 수 없겠냐고 묻기도 했다.

김티베, 루수엉, 판티투엔의 남편들은 1000만원의 결혼비용이 들었다. 그들은 이 돈의 상당부분이 처가에 빙금(신부대)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처갓집에서 받은 돈은 최대 25만원 정도였다. 김티남 씨는 “결혼하는데 250만동(20만원)이 들었다. 그리고 중개업자로부터 250만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마을주민은 “해마다 중개업자들이 이곳을 들른다. 인근마을 주민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딸을 한국에 보내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딸을 한국으로 떠나보낸 부모는 한국의 사위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 김티남 씨는 “딸도 보고싶고 손녀도 보고 싶다. 딸 내외가 베트남을 한 번 오던지 내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 사위는 둘째가 생기면 한국에 초청한다고 했다”며 언제가 될지 모를 만남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