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둘 일 수 없는 기업과 지역3>

제주은행의 부장급 직원들은 매주 목요일 머리 아픈 회의를 해야 한다. 한주 동안 접수된 각종 지원과 후원, 협찬 의뢰 건을 심의해 지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협조 요청을 다 들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회의에는 부장 보다 높은 직급의 이른바 임원은 참석할 수 없다. 심의는 투명하고 형평성에도 맞아야 하는데 임원들이 참석할 경우 사회적 관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융통성 없는 기준을 들이대 무 자르듯 하지도 않는다. 혹여 부결되더라도 참고자료로 활용해 다음기회에 유무형의 가산점이 주어지기도 한다.

제주은행 관계자는 “매주 10건 이상 접수된다. 지원을 요청하는 측과 은행 모두 결과에 대해서 이런저런 뒷말을 하지 않는게 불문율이 되다시피 했다. 고위 임원들이 외부에서 지원 협조를 받더라도 심의위에 상정하겠다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보니 결과에 불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은행은 매년 당기순이익의 12% 이상을 사회공헌사업으로 환원하는 등 지방은행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어린이재단과 맺은 사회공헌협약식.

밑바닥 그물 조직망, 도민 애환 담아

제주은행은 1969년 자본금 2억원으로 설립됐다. 1972년 12월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으며 1973년 6월 제일은행 서귀포지점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1984년엔 비자카드 업무를 개시했고 1996년 지방은행 최초로 제주특별자치도 금고로 선정됐다. IMF를 맞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제주은행은 2002년 5월 신한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됐다.

현재 서울 2개, 부산 1개를 비롯해 38개의 점포망을 갖추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총수신과 여신이 각각 2조2710억원과 1조9976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매년 140억원 안팎의 당기 순이익을 실현하고 있으며 금융기관 안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BIS 자기자본 비율이 11.32%로 매우 높다.
 
제주은행이 제주지역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지방은행으로서 문턱이 낮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읍·면 지역까지 점포망을 갖춘 접근성도 한몫 했다.

제주도 인구는 60만면이 채 되지 않으며 행정구역도 2개 시와 2개 군, 7읍 5면으로 단촐하다. 제주와 서귀포시 행정동 또한 모두 합쳐 31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도내에만 35개 점포가 운영중인 것이다.

제주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흉내낼 수 없는 지방은행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월등한 이용편의성과 지역 주민에 대한 다양한 금융혜택, 여기에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함으로서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버금가는 지방은행의 역할

제주은행이 성공한 향토기업으로 평가받는 것은 우수한 경영실적을 유지하면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확실한 자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기업이 이익 확대를 위해 지역공헌사업을 외면하는 사이 제주은행은 매년 당기순이익의 12% 이상을 지역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20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협찬이나 후원을 결정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 심의위원회를 여는 것은 상시 활동 수준으로 보편화 됐다면 재래시장 상품권 사업이나 기업유치 활동 등은 웬만한 경제단체에 버금갈 정도다.

제주도 충북과 마찬가지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이 이뤄지며 2006년부터 ‘재래시장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제주은행이 재래시장상품권 사업에 적극 참여해 지금까지 8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은행내 당직비나 각종 시상금을 이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등 활성화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재래시장상품권의 사용처를 수퍼마켓 등 골목상권에 까지 확대안 ‘제주사랑상품권’ 보급 사업에는 전액 은행이 부담해 5% 할인행사 까지 추진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향토사랑이라는 명분을 달지 않더라도 고객 대부분이 소상공인 등 제주 서민들이다. 이들로 인해 성장한 기업이 이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제주은행은 또 기업유치에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제주도가 이전기업에 대해 행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금융지원은 제주은행이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도와 제주은행의 ‘투톱 작전’으로 음향기기를 생산하는 키멘슨전자가 제주로 이전했으며 나아가 지역내 300여개 부품 납품업체를 연계해 2500명의 고용을 창출하기도 했다.

지방은행으로서 제주은행의 가치는 무한대
윤광림 제주은행장 인터뷰

▲ 윤광림 제주은행장.

윤광림 제주은행장은 “지방은행은 시중은행이 흉내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갖고 있으며 주민과 교감하고 사회 일원으로 지역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효율을 명분으로 점포를 줄이는 시중은행과 달리 제주에만 빼곡히 35개 점포를 운영하면서도 흑자경영과 지역공헌사업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방은행이기 때문이라는 것.

제주은행이 마흔돌을 맞는 동안 지역주민들과 문턱이 닳을 정도로 가까워 진 것도 지방은행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확신한다.

제주은행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 신한은행그룹 자회사가 된 것은 지방은행이 장점에 시너지를 더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행장은 “신기존의 지역밀착 경영시스템에 신한은행그룹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경영시스템을 접목시켜 지방은행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당장  2002년 125억원이라는 사상최대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한데 이어, 지난해 143억원으로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고 12% 이상을 지역공헌사업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행장은 이러한 장점을 살려 제주은행을 ‘Local Top Bank’로 육성할 중장기 전략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지역이 산업기반이 약해 금융수요가 적지만 여러 시도를 통해 지방은행으로서의 확실한 비전을 마련한 만큼 지방은행의 모범을 만들 각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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