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루헤 ZKM 예술미디어 센터의 고민 ‘디지털도 늙는다’
탄약공장 리모델링해 건립, “지역합의체가 건물 방향 정해”

글 싣는 순서
1.지역문화공간을 둘러싼 변화
2. 충북문화공간의 새지도
① 랜드마크 만들기
② 유럽 ‘아트팩토리’ 사례
3. 예술가 점거가 이뤄낸 실험공간
4. 지역민의 일상과 손잡다 

서독일 칼스루헤의 예술미디어센터 ZKM은 과거 탄약공장이었다. 80년대 중반 이곳은 ‘예술’과 ‘미디어’ 를 연결짓는 실험을 펼친다.

사실 칼스루헤는 역사적으로 과학이 발달한 도시다. ‘헤르츠’라는 단위로 유명한 과학자 하인리히 헤르츠 역시 이곳 대학출신이다. 이 지역의 예술가와 주민, 정치인과 과학자들은 한마디로 ‘신미디어’에 늘 관심을 갖고 투자해왔다. 그러니까 ZKM를 건립할 때 과제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정보 아이티 통신, 새로운 방송시설, 문화예술을 어떻게 통합하느냐.

ZKM 총괄매니저 크리스티아네 리델 씨는 “처음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방향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미래지향적이고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적·환경친화적인 건물을 짓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국제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건축가 램콜 하스의 작품이 채택됐다. 이제 문제는 막대한 건축비 확보였다. 당초 건설후보지는 중앙역 건물 옆 공터였기 때문에 신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그래서 칼스루헤 지역합의체는 20여년 간 비어있던 탄약공장을 리모델링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를 통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문을 닫고 비어있던 시기, 사실 이곳은 예술가들의 점거로 아뜰리에가 됐다. 비록 불법이긴 했어도, 예술가들의 점거는 주민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스티아네 리델씨는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남아있는 탄약 공장이 예술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주민들에게 큰 정서적 위안을 가져다줬다. 새로운 시대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전쟁의 기억과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대해 주민들의 자부심이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 ZKM은 미디어와 관련된 통합시설로는 단연 독보적이다. 미술가 조각가 음악가가 실제로 한 공간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으며,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미디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공간
ZKM은 미디어와 관련된 통합시설로는 단연 독보적이다. 미술가 조각가 음악가가 실제로 한 공간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으며,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이러한 공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이 지역 대학의 크로츠 교수였다. 그 아이디어는 “음악가는 작곡활동을 하고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는 자기분야의 활동이 미디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매개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ZKM은 미디어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인간은 어디로 가고 예술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등 통합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ZKM 건물은 크게 10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또 그 안에서도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ZKM 또하나의 현대식 신축건물은 오페라 극장인데, 지역민의 공연장으로 애용됐다. 또한 음향실 ‘Safe Room’은 한마디로 음향 과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각도에서 음향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스피커가 있다. 이 시설은 특별한 음악적 자질을 가진 작곡가나 음악가가 신청을 하면 무료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할 땐 사용료로 후원기금을 받는다고.

ZKM의 주요 컨셉 중 하나는 미래지향성이다. 그러나 끝없이 미래를 지향하는 만큼 과거의 기록도 그 높이만큼 쌓이는 법. ‘과거의 방’인 구식 매체 보관실에는 구식 TV, 음반, 비디오 테잎들이 전시돼있다. 크리스티아네 리델 씨는 “회화는 몇 백년을 존속하고, 책은 몇 천년을 간다. 또 돌에 새긴 역사는 몇 만년을 지속하지만, 테이프에 보존된 음향 기록들은 불과 몇 년을 가지 못한다”고 했다.

ZKM의 이러한 고민은 ‘오디오 아카이브’에서도 잘 드러났다. 과거의 소리를 어떻게 복원 재생할 것인가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여기서는 갖가지 audio player를 구비하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ZKM의 ‘미디어 라이브러리(Media Library)’는 미디어계의 ‘지상의 공룡’이라고 할까. 복원이 완료된 재생된 음향, 영상물등이 무려 1만5천장 보관돼있다. 마그네틱 방법을 통해 30년을 보존할 수 있게 만들었고, 여기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960년대 작품이다.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지하에 마련된 영상실에서 원하는 것을 시청할 수 있다고.

또한 게임박물관에서는 그동안 세상에 나왔던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들과 그 부품들이 진열돼 있다. 여기에선 ‘갤럭시’와 같은 추억의 게임들을 만날 수 있었다.

ZKM은 연간 운영비로 총 1천400만 유로가 들어간다. 운영비의 절반은 시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바덴뷰텐주에서 지원한다. 재단에서 기금으로 들어오는 것은 130만~300만 유로 정도다. 전체직원이 80명이며 초빙되는 음악가, 교수, 학자 등 조력자를 포함하면 150명 가량된다.
/ 독일 칼스루헤=박소영 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