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87% 이어 10% ‘기호지방이 전체 97%’
“서울 가깝고 독점 토착세력 없어 장악 쉬웠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 세 번째 재산환수 결정을 내린 결과 충북에 속해있는 환수 재산이 경기도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 2일 조사가 결정된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정석용 소유의 토지도 충북 옥천군에 있어 재산환수가 결정될 경우 충북의 환수 토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22일 30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왕족 이해승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8명 소유의 토지 233필지, 201만8천645㎡(시가 410억원·공시지가 174억원 상당)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재산환수 결정이 내려진 대상자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던 왕족 이해승 외에도 을사조약 당시 내부대신이었던 이지용,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유정수, 고희경, 민영휘, 민병석, 송병준, 한창수 등이다. 이번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재산환수 결정은 지난 5월2일 1차, 8월13일 2차 결정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환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3자에게 처분한 재산도 포함됐다는 것. 실제로 지난 1·2차 국가귀속 결정 당시 재산환수 대상자였던 고희경, 민병석, 송병준, 한창수 등의 경우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한 재산 일부가 이번 환수 대상에 포함됐다.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비롯해 한일합방 과정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수여받고 중추원 의장 등을 지낸 민영휘는 8월13일 2차 환수 당시 시가가 31억7500만원에 이르는 청주시 상당산성 내 토지 30만6793㎡를 환수 당했으며, 지난 2일에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는 2필지에 대해서 환수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국가귀속 결정이 내려진 친일재산은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22명의 토지 543필지, 329만3610㎡(시가 730억원·공시지가 315억원 상당)로 늘어났다.

친일파들 기호지방 땅에 관심
3차까지 진행된 국가귀속 결정 재산의 지역별 현황을 보면 전체 543필지 329만3610㎡ 가운데 경기 지역은 295필지 287만215㎡로 87.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충북이 53필지 32만9152㎡로 10%에 달해 두 지역을 더하면 무려 97%에 이른다. 이어 대구(30필지 5만1298㎡), 서울(93필지 1만8427㎡), 전북(39필지 1만1279㎡), 강원(14필지 4074㎡), 경북(2필지 3828㎡) 등의 순.

이처럼 경기와 충북지역에 친일파 토지가 많은 것은 일단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조건 때문으로 풀이된다. 충북개발연구원 김양식 책임연구원은 “아무래도 서울에 터전을 둔 친일파들이 기호지방으로 불리던 경기와 충청도를 선호했던 것 같다”며 “또 일제강점에 기여한 공로로 산림 등 국유지를 불하받는 과정에서 독점적인 토착세력이 없었던 충북이 상대적으로 장악하기 쉬웠던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3차까지 환수과정에서 충북이 경기도에 이어 2위를 기록한 것은 앞서도 언급한 민영휘의 상당산성 내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김양식 연구원은 이에 대해 “임오군란 당시 궁녀로 변장해 궁궐을 탈출한 민비가 충주·장호원 등으로 피신한 이후로 여흥 민씨가 1900년 이후 충주로, 청주로 세력을 확장한 경향이 있다”며 “관심이 가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비의 척족인 민영휘의 경우 ‘함경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토지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한말 최고의 갑부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민영휘는 한때 재산 규모가 4000만원(현 시가 8000억여원)까지 이르러 ‘고금(古今) 몇 백 년 내에 처음 보는 큰 부자’라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때 권중현, 송병준 등 충북 땅 환수
2차 재산 환수 당시 민영휘의 상당산성 땅이 대규모 환수됐다면 1차 환수 때에는 충북 영동 출신으로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영동 출신 권중현의 땅이 환수됐다. 권중현은 군부대신 재직 시 항일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농상공부대신으로 을사조약에 서명했다. 환수된 땅은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도로 등 모두 3필지.

송병준은 정미칠조약 당시 농상공부대신, 일진회 총재 등을 맡았던 대표적인 친일파다. 송병준의 후손들은 2004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인천시 부평구의 노른자위땅 ‘13만여 평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지탄을 받았으며 결국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1차 환수 때 국가에 귀속된 땅은 영동군 추풍령면 신안리 도로 1필지.

1907년 법부대신으로 항일의병 처결을 지휘하고 고종 퇴위와 ‘정미칠조약’ 체결을 주도했으며, 사법권이양각서?경찰권이양각서 체결에 참여한 조중응도 1차 환수 때 진천군 초평면과 덕산면의 2필지를 환수 당했다.

조중응의 후손들은 1차 때 함께 환수당한 경기도 남양주 일대의 땅에 대해 선산이라며 행정심판을 냈으나 기각됐다. 위원회의 국가귀속 결정에 대해 이의가 있는 당사자는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현재 행정심판 2건(조중응 관련 1건은 기각), 행정소송 1건(1차 대상자인 송종헌 관련)이 청구돼 현재 계류 중이다.

충북 환수 조사 대상 아직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재산 환수는 현재진행형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22일 현재 친일반민족 행위자126명의 2천513필지, 1천398만9천569㎡(공시지가 1천101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서 조사개시 결정을 했으며 이를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보전처분을 마친 뒤 친일재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환수 대상이 된 친일재산은 1904년 러일전쟁 시작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 등이며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된 친일재산도 포함됐다.

특별법 시행 이후 친일재산을 제3자가 매수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하더라도 이는 타인(국가)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무권리자의 양도행위가 돼 제3자가 선의인 경우라도 무효가 된다.

현재 충북에서는 1936~40년까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정석용의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땅에 대해서 11월2일 조사 개시 결정이 공고된 상태다. 이밖에도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고 신사건축비로 2500원을 낸 마지막 청주군수 민영은(1921~25 중추원 참의)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2차까지 환수가 결정된 사람의 67%가 중추원 부의장이나 고문, 참의였다”며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만 279명에 달하는 중추원 관련자 포함됐다”고 밝혔다.

해방 당시 충북지사였던 정교원은 1936~40년, 전시인 1951년 충북지사로 부임한 이명구는 1931~35년 청주대 설립자인 김원근도 1941~45년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충북 관련 주요 인사 가운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사람은 최소한 1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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