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연구, 유족·관계자 1000여 명 만난 신영우 교수

송정섭 선생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후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나오면서 가능했지만 이에 대한 선행연구가 있었기에 빛을 볼 수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유족 및 관련자 1000여명을 만나온 동학농민혁명 연구소장 충북대 신영우 교수다.

한국근대사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사학자가 된 신 교수는 1987년부터 충북대학교 인문대 사학과 강단에 섰으나 그의 동학연구는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가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 동학농민운동이기 때문에 유독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동학의 근거지로 알려진 전라도 못지않게 충북도 동학운동이 활발했던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가 너무 미흡하다”며 “손병희의 조카인 손천민과 승려 출신 서장옥 등 동학 지도자들이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당시 동학농민군의 청주성 점거 시도는 양호도 순무영의 구원으로 막아내야 할 만큼 거셌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송정섭, 이용호 등 대원군의 밀서를 가지고 충청도, 경상도 등에서 활동했던 동학 소모사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들이 연고를 중심으로 활동했을 것이라는 추측 외에는 깊은 연구에는 접근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 교수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기초연구가 미흡하지만 후손들을 찾게 된 만큼 당사자는 물론 후손들의 삶까지 연구에 접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손 증언록 펴내겠다”
신 교수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것은 30여년 가까이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유족이나 관계자들을 만나 증언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유족회를 통해 만나는 사람만 300명에 이르고 그밖에도 경향각지를 찾아다니면 증언을 청취했기 때문에 그 숫자는 1000여명이 훨씬 넘을 정도다.

상당수는 이 과정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까닭에 신 교수가 연구에 나서지 않았다면 진실이 세월 속에 묻혀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 교수는 지금까지 모아온 유족 및 관계자들의 증언을 ‘증언록으로 묶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 교수는 이 같은 연구 업적으로 바탕으로 2년 전부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부설 동학농민혁명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또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동학유족등록 심의의원회의 중앙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교수는 지난 7월30일 ‘광무양안과 진천의 사회경제 변동’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공저·도서출판 혜안)했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한말 일제하 충북 진천의 유교지식인 연구‘라는 부제 아래 홍승헌, 정원하, 정인표 등 양명학을 공부한 진천 거주 유교 지식인들이 경술국치 이후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신 교수는 “망국의 과정을 지켜본 강호학파의 유력인사들이 자결을 시도했으나 가족의 만류로 실패하자 만주로 망명했다가 시신이 돼서 돌아왔다”며 “절개를 지킨 유학자들의 사례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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