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화현상은 문화영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

2001년은 ‘지역문화의 해’였다. 그러나 지역문화의 해는 결론적으로 문화로부터 소외된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나누어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기획단계부터 지역문화인들이 배제되고, 문화의 지방분권과 문화자원의 지방분산이라는 장기적인 국가목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체적인 여론이다. 청주민예총은 지난해 12월 29일 ‘지역문화의 해는 지역문화에 무엇을 남겼는가’ 라는 주제로 문화예술정책세미나를 열었다. 모든 영역에서 중앙집중화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지역문화를 살릴 가능성은 없는가. 이 날 세미나를 간추려본다.

“지역문화연대 중요하다”

‘지역문화와 지역문화연대를 위해 이야기할 것들’에 대해 주제발표에 나선 조경만 교수(목포대)는 “중앙의 헤게모니에 대응하기 위하여, 그리고 지역이라는 여건상 자칫 폐쇄적으로 될 위험을 벗어나고 지역간에 힘과 지혜를 모으기 위하여 지역간 연대가 널리 거론되고 있다. 연대의 모습은 일찍이 70년대 문화운동에서부터 보여져 전국 각 대학의 동아리들, 지역 문화예술조직, 노동조합, 농민단체, 종교단체 등 전국에 진보적인 문화예술 조직들이 생겨났다”며 지역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역문화 활성화는 차이를 인정하고, 대안을 만들며 혁신을 꾀하는 일이라는 조교수는 서로의 수평적 관계를 통해 자기문화를 바라보고, 이 관계속의 상대방 및 그의 아이디어와 자신이 상호 침투할 수 있는, 유연한 문화적 연대를 만드는 것이 지역문화 엘리트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표방하면서 지역이 소외되었음을 분개하는 지역사람들의 성향을 ‘이중적 정체성’ 이라고 표현한 그는 “엘리트층과 중간계층에서 이런 면이 잘 나타나는데 이들은 중앙과 지역사이의 문화적 중재를 통해 지역에 경제적, 사회적 자극을 가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 입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네트웍은 권위주의적 정체성과 중앙-지역의 시혜적, 의존적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지역문화 활성화를 진작시킨다는 목적이 있음에도 지역문화의 해 사업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을 파악하지 않고 지역문화에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명한 예술인들을 거부하고 자체 내에서 연희의 향유와 먹을 것을 나눈 ‘2001 해남 미황사 음악제’는 살아숨쉬는 문화를 생산해내기 어려운 지역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행사였다고 예를 들었다. 지역연대를 위해 조교수가 강조한 것은 수평적일수록 중앙의 권위주의와 허영에 찌들지 않고,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호혜적인 차원에서 서로의 차이가 인정되고 향유된다는 점이다.

문예진흥기금 80% 서울에서 사용

조교수에 이어‘지역문화와 문화민주주의’ 라는 주제로 토론에 나선 정지창 교수(영남대)는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남한 면적의 12%를 차지하는 수도권이 은행예금과 대출의 65%, 대기업 본사의 88%, 공공기관의 84%, 대학 및 연구기관의 61%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다보니 남한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밀집되는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며 “수도권 집중화현상은 문화영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국에서 거둬들인 문예진흥기금의 80%를 서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화의 서울집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지역축제가 예산낭비적인 전시행사와 획일화된 볼거리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한 정교수는 지역문화에 있어서는 거대주의(한국최초, 동양최대)와 제일주의(유명예술가, 인기연예인, 관객동원 숫자)를 과감히 탈피하며 작지만 개성있는 문화시설과 축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인배 한국민예총 기획실장은 ‘정부문화정책과 민예총의 대응’에 대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도 인간적인 삶의 질이 나아지는 세기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기반산업이 최첨단산업이 될 것이다는 말로 축소 왜곡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이 초기 IMF관리체계를 맞이했을 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구조조정이 강행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을 흡수할 곳은 21세기형 ‘지식기반산업’이라고 하면서 컴퓨터프로그래밍, 문화, 관광산업 등이 중심영역으로 떠올랐고 경제발전논리에 밀려있던 문화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순수 문화예술의 진흥없이는 창의력이 계발되지 않고, 창의력이 없는 문화산업은 경쟁력이 없다는 그는 강력한 중앙집중의 문화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화 문화정책도 기획력의 강화와 중앙집중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박실장은 이어 지역화는 ‘다원화’의 의미를 가지고 민주주의의 자주성을 실현시키는 과정이라며 문화활동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도 세계화를 추진하는 중심에서의 중앙배분식과는 다른 운영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문화의 실천을 위한 몇 가지 과제’에 대해 발표한 박종관 충북민예총 예술사업위원장은 “몇 년 전만해도 문화적인 활동이 전무하던 경기도의 수도권 위성도시들은 최근 성공한 문화축제들을 만들고 있어 수도권의 위력이 점점 더 강력해질 확률을 드러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지역이 이기는 길은 지역다운 소재를 가공하여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박위원장은 지역문화의 해를 보내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지역문화의 의미가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 중심의 문화’ 개념이 되어서는 안되며 ‘외래문화의 영향이나 미디어, 기술정보의 영향을 덜 받아 독자적인 공동체 정서를 지니고 있는 문화’여야 한다. 그러나 지역문화의 해는 그렇지 못했다. 광역시 중심의 문화현실은 서울중심의 문화구도 축소복사판 형식이며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읍, 면 단위로 내려갈수록 그 척박함의 편차가 더욱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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