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어느 날 양(梁)나라 혜왕(梁惠王)과 치세(治世)에 관해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맹자가 물었습니다.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사람들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양혜왕이 대답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맹자, 다시 묻습니다. “몇몇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양혜왕, 대답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맹자, 말을 계속합니다.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면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소리를 듣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들을 이런 곤경에 이르게 하고 어찌 임금 혼자 음악을 좋아하는가. 아비와 자식이 서로 만나지 못하며 형제와 처자가 떠나 흩어져 있는데…’라고 원망합니다.
또한 왕께서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이 수레와 말방울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깃발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우리들을 이토록 곤경에 이르게 하고는 어찌 임금 혼자 사냥을 좋아하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며 형제와 처자가 떠나 흩어져 버렸는데…’하고 원망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왕이 백성과 함께 즐기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불여민동락(不與民同樂)이라 합니다. 그러나 왕께서 악기를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 피리소리를 듣고 기뻐하면서 ‘우리 임금이 질병이 없이 건강하심이로다. 어찌 저토록 북을 잘 치실 수 있을까’하며 즐거워합니다.
또한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수레와 말방울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깃발을 보고 기뻐하면서 ‘우리 임금이 질병이 없이 건강하심이로다. 어찌 저토록 사냥을 잘 하실 수 있을까’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왕이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 합니다.
이번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묻습니다.
“문왕(文王)의 동산은 사방이 70리인데도 백성들은 그것을 비좁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인의 동산은 사방이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그것을 너무 넓다고 비난합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 대답합니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이 70리이지만 풀을 베는 나무꾼이나 꿩을 잡는 사냥꾼들이 왕과 함께 동산을 쓰고있으니 백성들이 좁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왕의 동산은 사방 40리이지만 그 안의 꿩을 잡는 자는 사람을 죽인 자와 똑같이 다스리고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방 40리에 함정을 파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넓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백성은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의 덕치(德治)를 주창했던 맹자의 사상을 엿보게 하는 이 고사는 2천여 년 전에 이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본사상(民本思想)이 싹터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육도삼략(六韜三略)에도 보면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천하 모두의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천하비일인지천하 천하지천하(天下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라는 이 글귀 역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역설하고있습니다.
지난주 도민의 박수 속에 노무현대통령이 청남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덕량(德量)이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시절 우리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들이 나라를 사유물인양 전횡을 일삼으면서 국민 위에 군림해 국민을 업신여기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겸허히 민심에 귀 기울이면서 국민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할 때 국민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국민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쉴 곳조차 없게끔 하나뿐인 별장을 빼앗은 꼴이 되었습니다. 너무 야박한 것은 아니었나, 미안한 생각이 든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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