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종교지도였던 어거스틴이,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 소년을 보았다. 모래밭에 구멍을 움푹 파놓고 거기에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열심히 퍼붓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소년에게 “무얼 하고 있니?”하고 물으니 소년은 “바다를 구멍에 부어 넣으려고 해요.”하고 말하였다.
세계 속에 나를 집어넣으려고 애쓰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작 조개껍질로 모래구멍에 물을 부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모래가 물을 한정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것이 나를 수용하든 수용하지 않든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의 쓸데없는 일들을 꾸짖을 때가 있다. 내가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추기보다는 아이를 내 눈 높이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식목일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장차 이 나무가 세상의 어떤 비바람과 악조건이 발생해도 잘 자라기를 바랐다. 아이를 둔 세상의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우고, 잔가지를 쳐내주면서 물도 주고, 때로는 거름도 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잘 자라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밖에는 없다. 내 생각을 나누어 줄 수도, 무작정 풍족하게 용돈을 줄 수도, 내 인생의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지식을 나누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아이가 환경과 조건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해내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비록 지금은 아주 작고 미흡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큰 희망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의 방문 앞에 걸려 있는 다포(茶布)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방에 드나들 때마다 과연 나는 그것을 행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채찍질해 본다.
내가 남에게 손가락질 할 때마다 세 개의 손가락은 항상 나를 가리키고 있다. 누구의 탓보다는 나의 탓으로 돌려보자. 잘못된 일들은 자신의 책임이 크고 자기의 허물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바라보며 살자. 세상이 변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세월 속에 산다고 해도 사람이 지키고 행해야 할 도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꽃 잔치가 한창이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지냈던 시간들이 절대 헛된 시간은 아니리라.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들이 온 힘을 다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 나도 오늘 꽃을 활짝 피웠다. 비록 향기는 나지 않지만 누군가를 위해 손을 흔들어주고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를 하며 웃음을 나눈다.
웃는 시간들이 꽃처럼 예쁘고 즐겁다.

 

-김순영 민족문화 작가회의 충북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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