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 정부의 언론 정책과 관련해 한 공영 TV가 생방송 토론회를 가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일부 부처가 단행한 기자실 폐쇄, 취재 기자 방문 취재 불허, 일일 업무 브리핑제 도입 등 이른바 ‘언론 홍보 방안’에 대해 토론자들은 찬반 양론으로 갈려 한 치의 양보 없는 논리 대결을 펼쳤다.
반대 쪽 토론자들의 주장은 현 정부의 언론 홍보 방안에는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자 하는 반민주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들이 제시한 논거들을 종합할 때 수긍 가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반대 입장에 비해 논리적 섬세함이 돋보였지만, 일부 내용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나 싶었다.
문제는 이날 패널 참석자들의 면면이다. 정치권을 대표해 출연한 야당 의원은 해직 기자 출신으로 김영삼 정권 초기 청와대 공보수석에 이어 공보처 차관에까지 오른 언론통이다. 이 의원은 당시 언론 정책의 최종 입안자로서 그 유명한 ‘김영삼 언론 장학생’을 육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또한 언론인을 회유하고 언론과 정치 권력의 공생 관계를 통해 언론을 정권의 홍보 도구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한 문민정부 언론 정책의 핵심 브레인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언론 자유와 관련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의 알 권리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쓴 웃음을 거둘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조중동과 공생하지 않는 노무현과 이창동은 바보!”라고 비웃는 소리로 들렸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언성 높여‘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 신장’ 운운한 장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하긴, 천하의 독재자 전두환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훗날의 역사가 모든 일을 평가할 것이라며 기염을 토해대는 세상이니, 이 정도가 무슨 얘깃거리나 되겠는가 싶기도 하다. ‘사람 참 낯짝도 두껍다’ 싶어 TV를 끌까 말까 망설이던 시점에 마이크가 한 방청객에게 건네졌다. “언론 압살의 원흉인 민정당, 민자당을 뿌리로 둔 한나라당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일제를 찬양하고 독재 정권을 칭송했던 조선일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방청객의 정문일침이 이어지는 동안 나의 뇌리에는 매년 8월만 되면 야스구니 신사를 가득 메우는 일본 정객들의 추도 행렬이 오버랩됐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기 전에 자신들이 과거 우리 언론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그들은 지금 반성할 자유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절대로 그런 토론 자리에는 나타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일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심정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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